쑤세미의 궁상일기 - 식객

person 쑤세미
schedule 송고 : 2008-05-08 15:25
우리들의 행복한 진수성찬

가뜩이나 불안한 정국에 간만의 포스팅. 음식 얘기를 해야겠다. 의료민영화, 대운하 건설과 더불어 AI, 유전자 변형 옥수수와 미국산 소고기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예로부터 먹는 걸로 장난치는 놈들은 혼찌검을 내야한다 했거늘, 국가의 존립기반을 흔드는 무뇌충들 때문에 조용히 살아가고 싶은 나 같은 은둔자의 꼭지도 돌아버리고 만다.

허영만의 <식객>을 읽다보면 방대한 자료와 준비, 밀도있는 구성에 놀라곤 한다. 김강우, 임원희, 이하나가 주연한 영화도 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특히 김강우의 건실한 청년 역할이 무척 매력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소'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는데 나도 그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워낙에 지금 ‘소’에 민감한 터라 더욱 그럴 것이다. 예전에는 집에서 기르는 소는 소 그 이상의 의미였다. ‘식구’같은 소를 자식 대학등록금을 위해 내다팔아야했던 그 시절 아버지들은 밤잠을 설치다 마당 들마루에 걸터앉아 쓸쓸하게 담배만 뻐끔거렸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옛날 모락모락 김나는 짚, 콩, 풀을 섞어 끓인 쇠죽을 먹는 우리의 한우를 지켜내고 음식을 통해 ‘인간’이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만든 웰메이드 만화 <식객>. 어떤 생생한 영상보다도 만화를 보고 군침을 흘릴 정도로 맛깔난 이야기와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어머니의 가마솥 속 고구마를 잊지 못하는 사형수와 인위적인 향을 싫어하는 남자와 청국장식당집 딸의 이야기, 며느리에게 죽음을 예견하며 육개장을 전수하는 치매걸린 시어머니 이야기 등 가슴뭉쿨한 에피소드가 잔잔히 전개된다.

74년 데뷔하면서 3년 안에 뜨지 못하면 직업을 바꾼다는 각오로 열심히 그린 작품이 ‘각시탈’이라고 한 허영만. 기복없이 30년 만화인생을 걸어온 그는 몇년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늘 2등이에요. 70년대에는 이상무 선생, 80년대에는 이현세씨가 최고였고, 지금까지도 1등은 못해봤습니다. 속으로는 부러웠지만 등수에 동요되지 않는 법을 나름대로 개발해 마음을 단련했어요. ‘인기는 5위권에만 들면 된다, 나는 내 길을 가자’고 생각하는 거죠.”

....정말 겸손도 하셔라. 그러고보니 내가 예전에 이런 글도 썼었지.


비 보다 세븐

이영애 보다 심은하

프린스 보다 마이클 잭슨

베컴 보다 세브젠코

커피 보다 녹차

장국영 보다 양조위

임청하 보다 장만옥

토스트 보다 샌드위치

볶음밥 보다 비빔밥

짜장 보다 짬뽕

눈 보다 비

버스 보다 기차

바나나빵 보다 계란빵

곱창 보다 막창

맥주 보다 소주 

공지영 보다 공선옥 

화요일 보다 목요일 

게보린 보다 펜잘 

조인성 보다 강동원 

박찬욱 보다 봉준호

이현세 보다 허영만

낮 보다 밤

두유 보다 베지밀

위에서 바뀐 게 있는데 역시 ‘녹차 보다 커피’다. 커피는 유혹이다.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다. 그래서 타협하기로 했다. ‘곱창 보다 막창’도 바뀌었다. ‘곱창이나 막창이나’로.

어쨌건 <식객>에는 성찬과 진수, 그리고 그들의 따뜻한 주변인물들과 음식에 얽힌 많은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단행본에 곁들여진 생생한 취재수첩을 읽노라면 창작자의 고통을 뒤로하고 우리는 참 편하게 작품을 읽는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독자일 때가 가장 행복한 법이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얼마나 ‘의식주’에 좌우되고 ‘의식주’에 의해 울고 웃는가. 특히나 먹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인데 우리는 먹는 것에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만 한다.

쿵짝이 잘 맞는 진수와 성찬의 이야기처럼 어긋난 아귀는 처음부터 풀어 다시 맞추어야만 한다. 허영만의 초기작 <각시탈>에는 각시탈을 쓰고 ‘나쁜놈’들을 응징하는 독립청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21세기에서는 전세계적으로, 민중의 힘에 의해 ‘나쁜놈들’이 처절한 응징을 당했으면 좋겠다. 그건 다이어트와 더불어 올해 나의 희망사항 중 하나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진수성찬, 그런 시대가 과연 올까?

식객/ 허영만/ 김영사/ 1권 맛의 시작 ~ 현재 20권 ‘국민주 탄생’ 발간

글/쑤세미

변덕이 심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마음은 무척 따뜻함.  딴 사람 말을 잘 안 듣는 경향이 있긴 하나 어쩐지 카운슬링을 하면 잘할 것 같은 생각이 듬. 책을 읽어도 달리 해석하고 말을 잘 못알아 듣는 오독증상이 있음. 싫어하는 것은 정치인, 개, 소몰이 창법, 무례한 사람. 좋아하는 것은 김치만두, 프로젝트 런웨이, 비오는 날. 그리고 콩. 웅부공원 산책을 즐기며 비오는 날을 좋아함.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종료휘슬 불기 한 5분전쯤 박지성이 회심의 결승골을 만들어주어 ‘여드름의 암살자’ 류의 별명을 얻어도 좋으니 맨유의 전설이 되길 기대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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