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생존일어(2)-우에노
시내 관광을 전철을 이용해 하기로 계획했는데 도쿄 시내의 전철망은 서울에 비해 많이 복잡하다. 운영 주체도 다양하다. 서울의 지하철은 철도공사와 서울시가 운영하는 두 가지 노선이 있긴 하지만 이용자들은 구별할 필요가 없다. 표 한 번 끊어서 계속 갈아탈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전철은 JR, 도쿄메트로, 도쿄도에이 등의 전철이 공영이긴 하지만 모두 운영 주체가 다르고 여기에 더해 민간이 운영하는 사철도 몇 노선이 있다. 운영 주체별로 환승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환승이 불가능해서 새로 표를 끊어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같은 표로 환승이 가능한 경우라 하더라도 외부인이 그 표를 정확하게 끊어서 타기는 힘들어 보인다. 프리 티켓 같은 경우 환승이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지만 하루 종일 전철만 탈 생각이 아니라면 손해인 경우가 더 많다. 서울의 지하철은 환승역의 대부분이 선로가 교차하지만 도쿄의 전철은 교차뿐만 아니라 여러 노선이 평행하게 몇 역을 달리는 경우도 있다. 외부인이 다른 노선으로 환승할 때는 주의를 많이 기울여야 하는 단점이 있는 반면 환승역을 놓치더라도 다음 역에서 옮겨탈 수 있어 노선을 잘 아는 도쿄 사람들의 환승을 분산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복잡한 전철 노선을 어떻게 이용할 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시내 관광지의 대부분은 JR 야마노테센(山手線) 주변에 있기 때문에 이 노선을 중심으로 이동하면 큰 문제가 없다. 야마노테센은 서울의 2호선같은 순환선인데 도쿄 도청 과 유흥가가 있는 신주쿠역, 메이지 신궁이 있는 하라주쿠역, 젊은이들의 거리 시부야역, 도쿄 타워가 가까운 신바시역, 황궁이 가까운 도쿄역, 도쿄의 전자 상가 거리가 있는 아키하바라역 등 도쿄의 주요 관광지의 대부분은 야마노테센으로 접근할 수있다. 도쿄로 출발하기 전 인터넷에서 야마노테센 중심으로 전철 노선에 대한 공부는 조금 하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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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야마노테센의 역들이 있는 그림. 그림에 적힌 이상은 출처 확인 못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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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다바시에서 처음 끊은 전철표. |
호텔에서 우에노 공원까지 가는 방법은 간단했다. 호텔 인근에 있는 JR 주오센(中央線)의 이이다바시 (飯田橋)역에서 출발해 JR 아키하바라(秋葉原) 역에서 JR 야마노테센 중에 도쿄역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차로 갈아타면 곧 우에노 역이다. 엉뚱하게도 역을 나선 후에 방향을 잘못 잡았다. 역을 나온 뒤 오른쪽 길로 가야 하는데 안내 표지판에 오른쪽 길이 아사쿠사로 가는 길이라고 되어 있어 왼쪽 길로 접어들면서 많이 돌아서 가게 되었다. 덕분에 남들이 다 보았다는 공원 입구의 사이고 다카모리 동상은 보지 못하고 국립과학박물관 쪽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물론 길을 찾으면서 지나가는 젊은이들에게 길을 물었다.
“すみません, うえの こうえんが どころに ありますか?”
스미마셍, 우에노 고우엔가 도코로니 아리마스카?
(죄송합니다. 우에노 공원이 어디에 있지요?)
이번엔 거의 완벽했는지 그 젊은이들은 유창한 일본어로 대답해 주었다. 물론 내용은 그들의 팔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감을 잡았지만. 마지막에 "Thank you !"라는 말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 젊은이들은 우리 가족을 일본 사람으로 알았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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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사상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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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닉 이름이 직설적이다. |
우에노 공원에는 수학여행을 온 듯한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국립과학박물관 앞의 전시물은 고래였다. 해양국가임을 알게 해주고 포경에 집착하는 일본임을 알게 해주는 상징으로 보였다. 근처에는 국립박물관이 있었는데 관심도 없는 아이들을 위해 거액을 쓰기도 아깝고, 시간도 없어서 건물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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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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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과학박물관의 고래상 앞에서 |
우에노 공원에도 노인들이 많았다. 어느 나라나 노인들이 갈 곳은 공원 뿐인 모양이다. 추운 날씨에 공원에 있는 노인들을 보니 나까지 추워진다. 우에노 동물원은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냥 지나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시는 신사인 도쇼궁(東照宮)에 들렀다. 신사로 가는 길 양옆으로는 수십개의 석등이 줄을 서 있었는데 각 지역의 다이묘들이 충성의 의미로 보낸 석등들이란다. 안내하는 할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면서 알아들은 말은 다이묘의 서열대로 안쪽에서부터 배치해 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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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자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노인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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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에노 동물원 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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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쇼궁 앞에 나열된 석등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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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쇼궁 옆의 탑 |
우에노 공원을 빠져나와서 공원 건너편의 아메요코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메요코는 우에노의 재래시장이다. 단체 관광을 온 일단의 한국 젊은이들이 보였다. 지금은 재래시장이라기보다 관광객이 주 고객인 관광객 전용 시장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번에도 지나가는 노인에게 길을 물었다.
“すみません, アメよこが どころに ありますか?”
스미마셍, 아메요코가 도코로니 아리마스카
(죄송합니다. 아메요코가 어디에 있지요?)
노인은 길 건너편 빨간색 가라오케관 건물 뒤로 가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번엔 몸짓이 아니라 말을 대충 알아들었다. 인사도 “ありがとう ございます!” 일어로 했다. 간판에 보니 'アメ橫'라고 되어있다. 앞의 두 글자 아메를 가다카나로 적은 것을 보면 외래어 같은데 어쩌면 미국이란 뜻인지도 모르겠다. 옛날 미국 물건이 많던 시장이란 뜻인가? 대구에도 '양키시장'이라는 미국 물건을 팔던 시장이 있었던 것으로 봐서 그럴 수도 있겠다. 내친 걸음에 지명 이야기를 좀 더 하면 우에노(上野)는 윗들이라는 뜻이니 잘 찾아보면 근처에 시타노(下野)라는 지명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지명에 나타나는 상리, 중리, 하리, 상계, 중계, 하계, 상림, 하림 등과 같은 원리가 적용될 가능성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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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요코. 노란 조끼를 입은 한국 젊은이들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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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요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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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친코점. 프로의 입장을 금하는 경고문이 이채롭다. |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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