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생존일어(1)-숙소 찾아가기
아이들의 봄방학을 맞아 도쿄 여행을 하기로 했다. 새로운 경험과 비용 절감을 위해 항공편과 숙소는 여행사에 맡기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는 자유여행을 택했다. 지금까지 외국 여행을 적지 않게 했지만 가이드가 있거나 공항에 마중 나오는 사람이 있는 여행만 했기 때문에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늘 그렇듯이 확실하게 준비하지는 못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동경의 유명 관광지와 교통편을 확인하는 정도로만 준비하고 출발했다. 딸도 약간의 준비를 했지만 어떤 곳에 어떤 가게가 유명하다는 식의 제 나이에 맞는 준비만 했고 아내와 아들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따라가는 여행이었다. 길을 찾아가는 것은 모든 식구가 내 얼굴만 쳐다보는 상황이 예상되는 여행이었다. 몇 마디의 일어와 영어를 섞으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배짱과 불안감이 섞인 상태에서 출발했다.
김포공항에서 저녁 여덟시 2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10시 20분이 넘은 시간에 하네다 공항에 내렸다. 자국민들을 빨리 입국시키고 외국인들의 입국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인들 입국 시간이 지연되는 것에 신경을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는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하긴 우리나라도 가난한 나라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대기 시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심사를 할 가능성도 있겠다.
일본에 입국을 했으니 이제 시내 중심가에 있다는 호텔을 찾아가야 한다. 여행 안내서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하마마츠쵸(海松町)에서 내린 후 JR 야마노테(山手)선을 타고 칸다역에 내린 후 중앙선으로 갈아타고 이이다바시역에 내려 동쪽 출구로 나와 5분 거리에 있다는 정도는 사전에 확인했다. (도쿄의 철도 교통편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을 할 예정이다.) 어느 안내서에서 중심가로 가는 리무진 버스가 있다는 정보를 본 일도 있어 리무진을 탈 수 있는지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내는 찾아가는 길을 information center에 꼭 물어보라고 재촉한다. 막상 나오고 나니 모노레일을 타든 리무진을 타든 어디에서 타야 할 지 막막하다. 처음 생각엔 남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면 되겠지 생각했지만 한 사람씩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사람들이 몰려가는 방향도 알 수 없다.
출구 근처에 보이는 information center로 가서 안내를 담당하는 여직원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물었다. 긴장이 되니 거의 불가능한 일어보다는 짧은 영어가 먼저 나온다.
“What is the easiest way to Metropolitan Edmont hotel?”
내 발음 문제인지 그 여직원의 문제(영어 혹은 지리)인지는 몰라도 명확한 답변을 듣기 힘들었다. 리무진 버스로 갈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쯤 한국어가 능통한 청년(나중에 알고보니 한국 청년)이 나타나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둘 중 누가 알려줬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일단 무료 셔틀을 타고 국내선 1청사로 가서 모노레일을 타라고 가르쳐준다. 한국어를 하는 청년의 도움에 문제를 해결한 여직원은 기쁜 얼굴로 さんばん(3번) 출구로 가라고 알려준다. “ありがと とございます(아리가토 고자이마스)" 하고는 3번 창구로 나가면서 생각하니 모노레일은 국내선 1청사로 가서 타야 한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난다. 적어놓은 내용이 아니면 까먹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모노레일로 하마하츠쵸역에 도착한 후 어쩔 수없이 생존 일어를 구사할 일이 생겼다. 아내가 들고 오던 작은 가방을 잃어버렸는데 아무래도 모노레일에서 잃은 것 같다는 것이다. 이번엔 어떻게 물을 것인지 문장을 마음에 정리를 하고 역무원을 찾아갔다.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일본인에게 영어를 기대할 수는 없다.
“わたしの かないが モノレ-ルに がばんを...... (잃어버렸다가 뭐더라?)”
와타시노 카나이가 모노레-루니 가방오.....
“わすれましたか?
와스레마시타카
“(맞다. 와스레루.) はい わすれました。”
하이 와스레마시타
역무원 아저씨는 계단 위를 가리키며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한다.
“$&*(&^*^$&#$^# じむしょ(事務所) $&*(&^*^$&#$^#.“
“(사무실로 찾아가라는 모양이군) じむしょですか?”
지무쇼데스카
계단 위를 올라가니 사무실이 나온다. 문을 두드려 담당 직원을 불러서 다시 질문을 반복한다. 이번엔 자신 있게 잃어버렸다는 단어를 구사했다.
“わたしの かないが モノレ-ルに がばんを わすれましたが。”
와타시노 카나이가 모노레-루니 가방오 와스레마시타
“$&*(&^*^$&#$^# &^*^$&#$^#.“
“(음, 어떤 가방인지 묻는 모양이군) ちしさい ...... (검은 색이 뭐더라?) ”
“(모르겠고 다음엔 내용물을 이야기해야지, 여자 외투도 양복이니까 요후쿠라 하자)
がばんの なかには よふくが ...... (외투 두 벌은 어떻게 표현하지?)“
가방노 나카니와 요후쿠가 ......
“ (에라, 모르겠다.) に あります.“
니(2) 아리마스
또 그 담당 직원이 뭐라고 하는데 알아듣지 못했다.
“$&*(&^*^$&#$^# &^*^$&#$^#.”
“(음,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는 모양이군) メトロポリタン エドモント ホテルに”
메트로포리탄 에드몬트 호텔니
“(연락을 일어로 뭐라고 하더라? 에라 모르겠다.) 연락 #$^#.
그 담당 직원의 요지는 나중에 내가 자기들에게 연락하면 수거한 물품 중에 있는지 대답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하루에 분실물이 한두 개도 아닌데 어떻게 일일이 다 연락을 하냐, 네가 다시 연락을 해라, 뭐 이런 대답이었다. 그 직원의 이런 요지는 말을 들어서 이해한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자신의 사무실 전화번호를 적어줄 때 이해한 내용이다.
하마마츠쵸(海松町)역에서 JR 야마노테센(山手線)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산(山)을 ‘야마’라 하고 손(手)을 ‘테’라고 하는 정도는 공부를 했으니 쉬운 한자 두자와 선(線)자를 결합해 그 노선을 찾아갔고, 갈아타야 하는 칸다(神田)역 방향은 지도에서 도쿄역 방향임을 확인했으니 서울에서 지하철 타듯이 방향만 잡으면 되었다. 칸다역에서는 다시 같은 방법으로 주오센(中央線)으로 갈아타고 이이다바시(飯田橋)역에서 내려 안내서에 있는 대로 동쪽 출구로 나왔다. 쓰지는 못하고 몇 자 읽기만 하는 한자 실력이지만 일본에서는 큰 도움이 되었다. 밖으로 나오니 거의 밤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여기까지는 쉬웠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 동네의 상세 지도는 없고 호텔 안내문에 있는 작은 약도가 있기는 했지만 약도로 찾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여행 전문가들이라면 당연히 지도로 찾겠지만 내 경우는 물어보는 것이 훨씬 쉽다. 5분 거리에 있다고 하니 대부분은 위치를 알 것 같았다. 누구에게 물을까 찾고 있는데 어떤 술꾼이 다가와서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メトロポリタン エドモント ホテルが どころでsか?”
메트로포리탄 에드몬트 호테루가 도코로데스카?
どころ二ありますか(도코로니 아리마스카?)라고 묻는 것이 문법에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갑작스런 상황에 문법에 맞는 말을 할 정도면 일본어 공부를 폐하고 말았지. 그 물음에 그 사람은 내 일어 수준을 단번에 알았는지 몸짓으로 설명해준다. 역에서 오른쪽으로 쭉 가다가 저쯤에서 길을 건너 왼쪽으로 가라는 말이다. 나중에 생각하니 이 사람과는 콩글리쉬라도 영어로 묻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영어를 공부는 했지만 실습할 기회를 못 찾던 그 사람이 외국인을 보자 한잔 마신 용기에 영어 실습 기회로 삼으려고 했는데 일어로 물어서 기대가 무너진 것인지도 모르잖은가?
가는 도중에 가족들은 호텔 네온사인 간판을 봤다고 하는데 나는 보지 못했다. 간판이 보인다던 위치 근처에 호텔 로비가 보였다. 거의 확실하지만 프론트에서 다시 확인했다.
“すみません,Is this Metropolitan Edmont hotel?"
호텔 직원을 보자 일어와 콩글리쉬가 자동으로 섞여 나온다. 그래도 호텔 직원 앞에서는 전혀 걱정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발음들에 익숙해 아무리 어눌한 발음이라도, 아무리 이 언어 저 언어를 섞어서 말하더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그 다음 예약 서류를 보여부면서 “よやく(予約)しましたが” 했는지 “We have made reservation."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행 전에 깜쌤님께서 안전을 위해 여권을 몇 부 복사해서 지니고 있으라고 충고를 하셔서 두 부씩을 복사해 한 부는 가족들이 각자 지니고 한 부씩은 내가 가지고 있었다. 호텔 직원이 여권 사본이 필요하다고 하자 가지고 있던 복사본을 줬다. 그냥 여권을 주고 복사하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준비성 있는 사람임을 과시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여권을 함부로 꺼내어 보여주기 싫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애써 준비한 여권 복사본 한 부씩을 상납하고 말았다. 방을 배정받은 후에는 편의점 맥주로 안동 촌놈의 도쿄 입성을 자축했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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