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투쟁

person 김종규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8-04-16 18:14

제목을 보고 예민해지는 분들이 좀 있을 것 같다. 드디어 사노라면이 정치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혹은 사노라면의 자녀들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단식투쟁에 돌입한 모양이다. 혹은 어느 종교인이 단식을 하는 이야기를 하려나 보다. 등등. 사실은 나 자신의 이야기다. 2년 반에 걸친 뱃살과의 전쟁이 지지부진하여 지구전 양상으로 변질된 상태라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선택한 승부수라고나 할까.

요즘 이슬람 국가들은 라마단 기간이라고 한다. 이 기간에는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야 다르지만 나도 나름대로 나 나름대로의 라마단 기간을 정해놓고 있다.

1차 목표 체중(쌀 한 가마니)에 도달할 때까지 직장 식당에서 점심을 먹지 않는다.

20대 중반부터 꾸준히 불어나던 체중이 위험수위를 넘은 지가 오래다. 최근 2년 여 동안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불어난 체중이 잘 줄어들지 않아 큰 결심을 하고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최근 2년여 동안 주 4회 이상, 회당 4km 이상, 주당 20 km 이상의 걷기 운동을 했지만 체중은 계속 정체 상태다. 물론 증가는 하지 않지만 줄어들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지난해 송년 모임 때 직원들 앞에서 몇 가지 목표를 밝혔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체중을 1차 목표 체중까지 줄이는 것이었다.

꾸준한 걷기 운동에도 불구하고 체중이 줄어들지 않은 원인을 가만히 분석해보니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술이다. 술을 마시게 되면 알콜을 우선적으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같이 섭취한 안주는 지방으로 축적되게 된다. 현재 주 1~2회로 술을 줄이긴 했지만 전혀 마시지 않을 수는 없다. 인생의 낙 가운데 한 가지인 좋은 사람과의 대화를 위해서 앞으로도 완전히 끊을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딱 세 잔만 먹고서는 "그만 일어나자." 이런 식으로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다(이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마셔본 사람은 다 안다). 어쨌든 술을 주 1회 정도로 횟수를 줄이는 것 이상으로 할 생각은 없다.

둘째는 저녁 식사량이다. 아내는 요리에 별로 자신이 없다지만 난 아내가 해 준 음식이 맛있다. 작은 공기 하나를 비우고 나면 아쉬워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참을 수 없는 유혹. 꼭 반 공기 정도는 더 먹어야 한다. 아내도 살 빼라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저녁밥을 줄이라는 말은 않는다. 만약 내가 천천히 먹어서 양을 줄이겠다고 저녁을 '께작거리며' 먹으면 아내의 표정이 굳어질 가능성이 많다. 아내가 해준
저녁을 맛있게 먹는 것 또한 내 인생의 중요한 낙인 고로 이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셋째는 내 직업이다.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자리를 비우지 않고 꼭 앉아있어야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되는 것이 내 직업이다. 서서 돌아다닐 일도 거의 없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자리에 앉아있으니 다른 사람에 비해 칼로리가 덜 소비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렇다고 체중 줄이자고 호구책을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넷째는 심야형 인간과 관계가 있다. 두 시 전에 자는 일은 거의 없다. 대개 두 시 반 정도 자서 일곱 시 반 전후에 일어난다. 한 시쯤 되면 쥬스 한 잔이라도 생각이 나고, 빵 한 조각이라도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심야형 인간으로 사는 것이 체중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아침형 인간으로 바꿀 마음은 없다. 내 경우는 12시가 넘어야 머리가 맑아져서 뭔가 창의적인 생각이 잘 떠오른다. 그리고 가족이 모두 잠든 이 시간대가 나만의, 나를 위한 시간인 고로 이 시간대를 즐긴다.

이렇게 원인은 알되 대부분의 원인이 바꿀 수 없거나 바꾸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은 운동량을 늘이는 방법뿐인데 지금보다 운동량을 더 늘이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여름에는 강변에서 속보로 걷고 가을부터 봄까지는 집에서 기계 위에서 뛰듯이 걷는데 6~6.5 km 속도로 40분을 한다. 이 40분이 얼마나 지겨운지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시간보다 더 하라고 하면 난 차라리 비만 상태로 있는 쪽을 택할 것 같다.

궁리 끝에 생각해 낸 방법이 '점심을 굶자.'란 생각이다. 물론 무조건 철저하게 굶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같이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면 인간관계를 위해 나가기로 하고 있다. 단지 혼자 먹어야 하는 대부분의 날들을 먹지 않기로 한 것이다. 대신 음료수 한잔을 마시거나 자리에 먹을 게 있을 때는 과자 한 점 정도는 먹기로 하고 있다. 점심의 뜻이 원래 마음에 점을 찍는 거니 허전하지 않게 과자 한 점으로 위장을 위로해 줄 수도 있지 않겠나 싶다. 없으면 커피 한 잔.

2주 째 '점심 안 먹기 운동'을 하고 보니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오후에는 배가 덜 나와 보인다. 이것 상당히 중요하다. 비만이면 사람이 미련해 보이니 지방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배가 덜 나와 보여 좋다. 퇴근할 때쯤이면 혁대를 쭉 당기는 기분도 삼삼하다.

둘째, 간사한 것이 사람이라서 한 끼 굶으면 생각이 진지해진다. 약간 우울해지듯 진지해지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이슬람의 라마단이 이런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굶는 동안 진지하게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살피라는 뜻도 있을 것 같다. 수도자들이 금식을 하는 것도 굶으면 인간의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도 된다. 남들 먹을 때 굶는 것은 일종의 구도행위다(점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셋째, 저녁을 아주 맛있게 먹을 수가 있다. 요즘은 집에 들어가면서 문을 열면 바로 "빨리 밥도."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상하게도 아내는 나의 이 말을 즐기는 것 같다. 가만히 보면 반찬에도 신경을 좀 더 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약간 더 먹어도 덜 불안하다. 전에는 반 공기 더 먹고는 후회하고 했는데 요즘은 '점심 먹지 않았으니까.'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어 좋다.

넷째, 구내 식당에 가지 않아 좋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구내식당이 두 종류의 테이블로 구분되어 있다. 시골이라 아직 권위주의의 산물이 남아 있다. 구내식당에서는 직원들과 함께 식사하기 힘들다. 내가 직원들 좌석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것도 자주 하면 말이 될 수도 있다. 같은 시간에 식당에 도착해 나는 먹고 있는데 우리 직원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민망하다. 내가 먹는 좌석엔 친한 사람도 많지 않고(대개 나보다 많이 젊다.) 나 역시 사교적이지 않기 때문에 열 번에 일곱 여덟 번은 말없이 먹고 나오는 편이다. 구내 식당에 가기 싫다고 매번 밖에서 사 먹을 수도 없다. 매일 혼자서 사 먹으면 이상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많고 그렇다고 매번 누군가와 동무해서 가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출발은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권위주의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란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다섯째, 점심 시간이 넉넉해서 좋다. 잠을 자도 잘 수 있고 뭔가를 적더라도 시간이 충분하다. 이 글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적었다.

이 글을 통해 나의 '점심 안 먹기 운동'이 공개되었으니 이제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 그만두지도 못할 터이다. 공개하는 데에는 그런 목적도 있다. 1차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는 단식투쟁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이러다가 재미를 보면 '점굶사 = 점심 굶는 사람들'라도 만들지 누가 알겠는가? 최근 2 kg이 줄었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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