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믿지 말자
유명 스타와 자신이 같이 찍은 사진과 유명 스타만 있는 사진, 이렇게 두 장이 있을 때 자식에게 둘 중 한 장을 선택하라고 하면, 자식은 자신과 유명 스타가 같이 나오는 사진을 고를 것이라고 대부분의 부모들이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혈액원에 근무할 때다. 당시 이승엽 선수가 홈런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는데 아마도 두 번째 홈런왕을 노리던 때로 기억된다. 남들은 대개 신기록의 갱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혈액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회 현상을 헌혈 홍보와 연관짓는 버릇이 있어 이 현상을 헌혈에 이용할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현실이 되어 이승엽 선수의 유명세를 헌혈에 활용하는 방안이 실현되었다. 홍보를 담당하는 과장이 삼성 구단측에 이승엽 선수가 헌혈하는 모습이 뉴스에 나가면 헌혈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협조를 구했는데 구단측에서는 시즌 중의 헌혈은 혹 기록에 영향을 기칠 수도 있으니 그건 안 되고 시즌이 끝난 후 헌혈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은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방송국 촬영팀과 약속이 되어 구장으로 갔다. 가기 전 많은 직원들이 자신들의 자녀를 위해 싸인을 받아 달라고 부탁들을 했고, 난 우리 아이들 줄 것을 포함해 여러 장의 싸인을 받을 종이와 펜을 준비하고 구장으로 갔다. 구장에는 벌써 일본 아사히 TV에서 이승엽 선수를 찍으려고 와 있었고 아사히 TV가 인터뷰를 마치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3~5분.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잽싸게 그림을 만들어야 했다. 내 역할은 이승엽 선수가 헌혈이 가능한지를 문진하는 역할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그렇게 믿게 만들기 위한 것이고 실제는 촬영하는 동안 옆에서 폼만 잡고 서 있는 역할이었다. 인터뷰는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같이 간 직원 한 명은 나와 이승엽 선수가 TV 카메라를 위해 그림을 만드는 동안 열심히 자신의 카메라를 눌렀다. 당연히 싸인은 말도 꺼내 보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밀려 나왔다. 귀하신 몸이 된 고등학교 후배를 그렇게 잠시 배알하는 동안 같이 간 직원은 사진을 다섯 장이나 찍어두었다. 며칠 후 사진이 내게 넘어왔다. 물론 그 대가로 한턱을 내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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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얼굴이 있다는 이유로 자식들에게 거부당한 사진 |
오랜만에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미리 사진 분배 계획을 세웠다. 나와 이승엽 선수가 찍은 사진이 석 장, 이승엽 선수 혼자 나온 사진이 두 장. 연년생인 아이들이 서로 나랑 이승엽 선수가 같이 나오는 사진을 가지고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겠다고 하면 싸움이 날 터이니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차례로 한 장씩 가져가게 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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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들이 선호한 이승엽 선수 혼자만 있는 사진 |
딸이 먼저 왔다. 스타와 함께 찍은 사진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으며 나랑 이승엽 선수가 같이 나오는 사진 석 장 모두를 가지려고 하면 안 된다는, 그리고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오빠랑 나눠 가져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딸아이는 별 말 없이 이승엽 선수 혼자 나온 사진 두 장을 집었다. 아들놈의 반응도 마찬가지.
몇 년 전에 이직 문제로 고민한 적이 있었다. 모교에 계신 교수님께서 모교에 와서 일 할 의사가 없느냐는 제의를 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교수가 폼은 나겠지만 대학을 떠난 지 5년이 넘어 뭔 연구를 제대로 할 것 같지도 않고, 신임교수가 되기는 나이도 많고, 능력도 부족하고, 가도 무능교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사양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고, 아내는 남들에게 말하기 좋은 교수가 되기를 바라서 월급이 훨씬 적어도 참고 살테니 가라고 하고 있었다. 자녀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가는 방안도 생각해 볼만하다 싶어 딸에게 물었다.
"이러쿵 저러쿵 ... 넌 어떻게 생각하니?" "월급은 어디가 많아요?" "글쎄 비슷할 걸."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월급이 같은데 뭘 고민할 게 있느냐는 표정이다. 아빠를 완전 돈 버는 기계로 아는 모양이다. 딸아이가 시키는 대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원래의 직장에 몇 년 더 눌러 앉았다.
아들놈은 더 하다. 이 놈은 구두쇠여서 우리집 금고 노릇을 하는데 몇 만원의 현금이 필요하면 아들놈에게 자주 빌려 쓴다. 그럼 그 다음날부터 빚독촉에 시달리게 된다. 차비하고 남은 잔돈은 당연히 자기 돈이고, 자기가 부모에게 받을 돈은 100원까지 계산해서 조른다. 생일이나 어버이날 부모에게 선물하는 것도 아까와서 하지 않거나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색을 낼려고 한다. 늙어서 용돈 얻어 쓰기는 틀린듯 하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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