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위한 안동대학교 교수 선언

person 안동대학교
schedule 송고 : 2015-11-09 17:37

  정당한 법 해석과 절차 그리고 관련 예산배정 등 그 정당성이 심히 의심되는 가운데 2015년 11월3일 교육부장관이 확정고시한 ‘중등학교용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에 대하여, 이 나라를 걱정하는 우리 안동대학교 교수들은 큰 안타까움과 동시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2015년 오늘, 우리 대한민국은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 가계부채, 실업, 자살, 그리고 단군 이래 최악의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민생안정을 외면한 채 오로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매달리는 현 정부를 보는 우리 안동대학교 교수들은 안타까움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오늘날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하는 나라는 북한을 비롯한 전체주의 국가나 일부 저개발국에 불과하다. 특히,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국정 역사교과서가 역사를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절대군주국인 조선에서도 군주가 주관하여 역사를 집필하도록 한 사례는 없었다.
  그럼에도 유신 정권 하의 교과서에서 5.16을 혁명으로, 10월 유신을 구국의 결단으로 적었던 사례를 기억한다. 5공화국 시절 교과서는 1980년 일어났던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해 함구하고 있었다. 
 
  우리는 애국선열의 피로 세운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폄훼하고, 해방 후 친일을 반공으로 덮고, 수많은 양민을 좌익의 딱지를 붙여 학살하고, 고문으로 순박한 어부와 선생님들을 간첩으로 내몬 사실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역사를 ‘올바른 역사’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역사를 우리 학생들에게 배우게 할 수는 없다.
 
  역사교과서 집필은 역사적 사실과 그에 대한 해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정치인이나 정당이 주도할 수 없는 일이다. 역사교과서는 학자들이 자유로운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 객관적이고 엄정한 사관에 따라 다양한 견해를 피력하며 편찬하는 것이 정도이다. 만일 정치인이나 정당이 주도하여 역사교과서를 편찬한다면, 정권이 바뀌면 역사교과서는 또 바뀌게 되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현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위한 선언서를 아래와 같이 채택한다.

선언서

○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성과를 폄훼하고 부정하는 자학적 행위이고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적 행위이다.
 
한국사 국정교과서 제도는 일제 말기에 시행되었다가 해방과 함께 폐지된 후 유신 체제 하인 1974년에 다시 도입되었다. 국정교과서 제도는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주관했던 유신시대의 상징이다. 국정교과서 제도는 세계적으로도 북한 등 후진적 권위주의 국가만이 채택하고 있다. 국정교과서 폐지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진전이 가져온 자랑스럽고 귀중한 성과였다. 따라서 이제 다시 국정화로 회귀하는 것은 그간 진행되어 왔던 대한민국의 발전과 성숙을 부정하고 폄훼하는 자학적이고 반역사적 행위이다.
 
○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헌법에 어긋난다.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교육의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 원칙에 어긋난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위하여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헌법 제31조 제4항). 이는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이 일시적인 특정정치 세력에 의하여 영향을 받거나 집권자의 통치상의 편의에 따라 수시로 변경되는 것을 예방하고 일관성이 있는 교육체계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정부가 국민과 국회를 무시하고 충분한 논의도 없이 장관 고시만으로 일방적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1992년 헌법재판소도 ‘국정 교과서제도는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규정과 모순’되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념과 모순되거나 역행할 우려’가 있다고 판결하였다. 특히 국사 교과는 다양한 학설과 견해를 소개하는 것을 권고하였다(헌재 1992. 11. 12.자 89헌마88 전원재판부 결정).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헌법에 부합하기 어렵다.
 
 
○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유엔 등 국제사회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2015년 유엔(UN) 인권이사회는 베트남에 대한 국가보고서에서 "역사교과서는 비교할 수 있고 다양한 관점의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면서 베트남의 역사 국정교과서 제도 폐지를 권고하였으며 이 권고는 받아들여졌다.  유엔은 이미 2013년 제68차 총회에서 "하나의 역사교과서를 채택할 경우 정치적으로 이용될 위험이 크다"는 역사교육에 대한 보고서를 채택하였다. 우리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상식을 벗어나는 길을 감으로써 세계적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 온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하게 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
  정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국정화가 필요하며 국정교과서를 통해 분열된 국론을 통합할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교과서야말로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우수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국론 분열의 원인이다. 온 나라가 ‘역사전쟁’이라는 때 아닌 전쟁터가 되어 갈등이 폭발하고 대통령이 그토록 외치던 민생은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 이에 여기에 서명한 안동대학교 교수들은 각자 이념과 가치관을 떠나서 정부가 추진하는 국사교과서 국정화의 위헌성과 반역사성을 지적하고 이를 단호히 반대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참여교수 명단
김민재(윤리교육) 김영식(금속공학) 김영훈(환경공학) 김윤희(국어국문) 김종복(역사학) 김진호(음악학) 김진희(문화전문대학원) 김용하(국어국문) 김주환(국어교육) 김희곤(역사학) 박윤문(식품생명) 노석호(전자공학) 박우열(건축공학) 배영동(민속학) 백용균(응용신소재) 손병희(국어국문) 안영석(윤리교육) 이윤화(역사학) 이동진(지구환경) 이미경(식품생명) 이상현(민속학) 이성로(행정학) 이용범(민속학) 이영배(민속학) 이지영(국어국문) 임재해(민속학) 윤석수(물리학과) 윤지홍(물리학) 임언택(식물의학) 임재환(생명과학) 전대근(의류학) 전수현(한문학) 정인창(식품영양) 장혜원(문화전문대학원) 정진영(역사학) 정철의(식물의학) 천혜숙(민속학) 태지호(역사학) 차남현(간호학) 한양명(민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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