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가 가가 아이가?

person 김종규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8-03-12 18:26

길에서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날 경우가 있다. 분명히 초, 중, 고 시절 같은 반 아이였는데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어느 시절 친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 그 친구는 내 이름까지 알고 있으면 상당히 미안하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좀 낫다. 그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대충 기억이 복원되기 때문이다. 만약 엉뚱한 친구로 착각하고 한참을 떠들었다면 수습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금요일 오전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김00 이라는 고등학교 동기라고 자신을 밝혔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3학년 때 같은 반이라고 했다. 오전에 자리에 있으면 한번 찾아오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 주소록을 보니 그 이름이 맞다. 주소록엔 창원에서 직장을 다니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안동엔 웬 일이지? 문상을 올 일이 있나? 병문안을 온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상한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찾지 않던 고등학교 동기가 찾아오면 거의 내 주머니와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 그래도 뭐 더 이상 보험들 일 없고, 무슨 회원권이니 하는 것은 살 일이 없는데다가 그 친구가 그런 쪽에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니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점심이나 같이 하지 뭐. 점심시간이 되어도 퇴근 무렵이 되어도 오지 않는다.

퇴근 시간이 한 시간 조금 못 남았을 때다. 손님이 찾아왔는데 확실히 아는 얼굴이 옆에 부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서 있다. 오전에 오기로 한 친구가 이제 온 모양이다. ‘이 친구 거의 변하지 않았네. 척 보니 알겠어.’ 이런 생각을 하며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부인과 함께 온 것을 보니 사업상 온 것은 아니어서 더욱 안심이 되기도 했던 모양인지 내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넘쳤다.

“어서 온나.”

“안녕하세요?”

“그래, 어쩌구 저쩌구”

‘그런데 이 친구 왜 자꾸 말을 높이지? 병원에 와서 잔뜩 긴장을 해서 그런가? 아니면 부인이 옆에 있어서 내숭을 떠는 것인가?’

 “동기끼리 왜 말을 올리고 그라노?”라는 말을 하기 직전에 이 친구의 입에서 “선배님”이라는 표현이 튀어나온다. 번개처럼 뭔가 떠오른다. ‘야가 가가 아이가(이 친구가 그 친구가 아닌가)?’ 날더러 선배라고 하는 것을 보면 오전에 전화를 한 동기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어쩐지 얼굴이 너무 변하지 않았더라니. 그럼 내 말투가 문제가 있다. 성인이 되어 만난 사람을 고등학교 후배라고 무조건 반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동문 후배들에게 말을 놓지 않는다. 동기야 상호 반말을 하는 것이 예의처럼 되어있으니 받아들이지만 후배에게는 그것이 일방적이니 싫기도 하다. 그렇다고 반말을 하다 갑자기 말을 높이기도 어색해 부인에게 얼굴을 돌렸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선배님, 제가 몸이 좋지 않아서 왔습니다.”

 이 후배가 대신 대답을 하는데 보니 손에 처방전 같은 것을 들고 있다.

 “이리 줘 보세요.”

얼른 말투를 바꾸면서 처방전을 받는다. 컴퓨터에 가서 방사선 사진이랑 검사 결과랑 보면서 슬슬 말을 높이기 시작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영주 지역 동문회 총무를 맡고 있는 1년 후배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고 나니 기억이 거의 완성된다. 평소 고등학교 동문회는 나가지 않는데 지난해 초 동문회는 빠질 수가 없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의 CEO가 안동 지역 회장을 맡아서 직장 내 고교 동문은 모두 모이라고 엄명을 내렸는데 이상하게도 동문회 며칠 전까지 고교 동문은 나 혼자였고 동문회가 있기 하루 전쯤 내 1년 후배가 경력직으로 입사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난 후 직장 내의 그 후배가 자신의 동기를 내게 인사시키러 내 방에 데리고 온 일이 있는데 그 때 만난 후배였다. 그래서 얼굴은 확실히 알겠고 옛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후배가 눈치를 챘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미안하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처음 그 후배를 동기로 착각하고 반말을 하며 맞았던 것이 차라리 잘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인도 옆에 있는데 “확실히 아는 얼굴이긴 한데 누구신지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했다면 그 후배도 좀 난감했을 수도 있으니까. 세월이 지나면서 기억력이 점점 떨어진다. 안면은 있는데 누구인지 모르는 일이 자주 생긴다. 다음의 인기 블로그인 ‘낙도오지(아주 재미있고 의미있는 블로그니 많이 방문하시길)’의 주인장 ‘등대지기’님의 정면 사진을 어제 봤는데 확실히 아는 얼굴이다. 어렴풋이 어떤 단체에서 만난 것 같기는 한데 확실하지는 않고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보다 몇 살 위였다는 생각만 든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일을 겪을지 걱정이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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