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단상
1. 나이
올해 들어 나이가 먹고 있음을 자주 느끼게 된다. 흰 머리가 늘어나면서 입을 대는 사람이 많아진다든지, 얼굴에 기름기가 빠지면서 체중이 줄지 않았는데도 살이 빠졌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것은 외형적인 현상이다.
심리적으로 주변 일들에 열정이 생기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직장에서도 회식 후 노래방에 갈 때쯤이면 빠져 주는 것이 예의가 되어버렸다.
이 문제는 내가 나이를 먹는 문제도 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신입 직원이 많아져 20대가 거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생긴 현상이기도 하다.
봄부터 한학 공부 모임에 참석하는데 10여명 되는 사람들 중에 내가 막내다. 60대 중반부터 40대 후반까지, 평균 연령이 50대인 분들과 어울리려니 자동으로 나이 먹은 흉내를 내게 된다. 직장에 50대 중, 후반인 동문 대선배님들 세 분이 계시는데 두 분은 기러기 아빠들이다.
올여름 어느 주말에 이 분들이 강구에 대게 먹으러 가는 자리에 초대를 받기도 했다. 주말에 집에 있어도 별 볼일이 없는 분들이 나도 비슷한 입장이라고 본 모양이다.
난 아직 그 정도는 아니어서 최소한 마누라는 주말에 밖에 나가는 것 싫어하는데. 그런 자리에는 내가 돈 낼 일이 없으니 공짜로 대게 먹고 와서 좋기는 했다. .
올해 드디어 가족 관계에서도 나이를 실감하는 사건이 생겼다. 11월 마지막 토요일 처가 장조카의 결혼식이 있었다. 부조계를 맡아달라는 처남의 부탁이 있었지만 출근을 하는 날인 관계로 맡지 못하고 식만 참석했다. 식장에 도착해보니 이질(姨姪) 둘이서 부조계를 잘 처리하고 있었다. 그럴 나이들이 되었다. 문제는 식을 마치고 나서 폐백실에서 절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마누라가가 6남매 막내여서 고모부 자격으로 그 자리에 참석해야 했다. 영감님들이나 폐백실에서 절을 받는 줄 알았는데 이제 남의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2. 결혼식
결혼식의 풍습도 많이 바뀌었다. 이 날은 신랑, 신부의 어머니 두 분이 같은 한복을 입고 같이 입장을 해서 화촉을 밝히는 모습을 연출했는데 신선한 아이디어로 느껴졌다.
다만 다음 결혼식에도 그런 모습으로 화촉을 밝히려면 새로 한복을 해서 입어야 한다는 경제적인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 외에도 예식장에서 하는 서양식 결혼식도 세월이 흐르면서 형식이나 절차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런 변화는 대개 예식장에 수입이 올라가는 방향으로 바뀌어간다. 식이 끝나면 커다란 케이크를 자르는데 피로연이 아닌 결혼식만 하는 자리에서 케이크를 잘라서 누가 먹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최소한 수십만 원은 그렇게 들어가는 것 같다. 결혼 기념사진을 미리 찍는 것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혼 당사자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결혼식 문화도 있다. 축가를 부른다거나, 차를 장식하거나, 행진 때 오색 테니프를 쏘아주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루어진 기본 절차에 해당한다.
요즘은 결혼식장에서 신랑이나 신부에게 춤을 추게 하거나 어른들이 보는 앞에서 신부를 안고 걸어보라고도 한다. 어두운 시절에 결혼을 해서 그런 고초를 겪지 않고도 넘어간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하나? 특히 신부를 안고 걸어보라는 사회자의 지시를 받았다면 많은 하객들 앞에서 신랑 부실하다는 소릴 들을 뻔했다.
결혼 당사자나 혼주는 진행자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것은 전통 결혼식이나 지금이나 별 다름이 없다. 폐백실에서도 전문 진행자는 능숙한 솜씨로 혼주들과 친척들을 다루며 폐백을 진행시켰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었다. 요즘은 신부 부모님도 폐백 장소에 합석을 하는데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모습이라 생각된다. 진행자가 고모들에게 엿을 하나씩 주면서 하는 말이 재미있었다. 이 엿 먹고 친정 질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단다. "엿 먹어라."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그 날 알게 되었다.
과거엔 피로연을 마칠 무렵 신랑 신부의 친구들이 신랑 신부가 신혼여행 가지 못하도록 붙들어 놓고 혼주에게 돈을 우려내는 풍습이 있었다. 재미로 시작된 일이지만 때로는 도가 지나친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그런 풍습을 볼 수가 없다. 결혼식 전에 신랑 신부가 친구들을 그룹별로 구분해서 한잔 할 돈을 미리 준다고 한다. 신혼여행 출발 때 보니 친구들 대부분은 가고 없다. 그래도 결혼식인데 약간의 재미는 있어야 할 것 같아 중고등학생들인 우리집 아이들과 작은 처남 아이들을 충동질을 했다. 신랑 신부가 탈 차를 막고 돈을 우려내라고. 뒷책임은 내가 질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처음에는 혼이 날까봐 망설이던 아이들이 나중엔 본격적으로 차앞을 막고 앉아 농성을 해서 새형수로부터 몇 만원씩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이 모습을 보고는 어른들이 더 좋아서 작은 처남은 아예 돗자리를 꺼내서 깔아주기도 했다. 다들 자신들 결혼식 때 모습을 보니 반가운 모양이었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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