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공부

person 김종규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8-02-20 18:18

자식 농사에서 학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만 입시철이 되면 학부모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아이들의 입시문제가 된다. 나도 고입 수험생이 있으니 관심이 없을 리가 없다. 10월이 되면서 주변에서 아이들의 입시에 관한 소식이 들려온다. 먼저 직장의 어느 간부 아들이 과학고 2학년 조기 졸업으로 ㅍ 공대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좋은 일이네 생각하고 넘어간다.

이어지는 소식은 나랑 동갑내기 동료의 아들이(딸아이와 같은 학년) 강원도에 있는 유명 자사고에 합격했다는 소식이다. 안동 시내 몇 곳에 축하 현수막까지 내걸렸다. 이 동료에게는 축하의 말을 건네고 한잔 얻어먹기까지 했다. 안동에서는 특목고를 보내기 위한 전문 학원이 없어 자신이 직접 아이를 지도했다고 한다. 세상에는 자기 자식에게 직접 학습 지도를 할 수 있는 아버지도 있는 모양이다. 이 이야기를 마누라에게 전했다가 욕만 실컷 얻어먹었다. 남들은 아들 직접 가르쳐 명문고를 보내기도 하는데 난 뭐하냐는 거다.

같은 학년인 우리 딸? 그 명문고야 꿈도 꾼 일이 없지만 어디 특목고 비슷한 곳에 원서라도 한번 써 봤으면 좋겠다. 현재 기말고사를 앞두고도(중3은 일찍 기말고사를 친다) 공부하는 기색이 없다. 기말고사 성적에 관계없이 자신이 갈 학교는 정해져 있으니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단다. (그래 니 똑똑하다.) 그렇다고 고교 과정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집에 오면 대부분의 시간을 TV를 보거나 인터넷에서 옷이나 신발 등등을 검색하며 산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해서 담임 선생님이 전화를 하기도 했다. 하루는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학교에서 아프다고 조퇴를 했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집에 와보니 그렇게 아픈 것 같지도 않았다.

딸아이 때문에 무단 외출을 해서 집에 와 있을 때 대구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안부 전화도 아니고 아들이 이번에 모 의대에 수시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고 한다. (부채질을 해라.) 그래도 일단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언제 한잔 사라는 말도 빼먹지 않고 전했다.

그 날 저녁이거나 그 다음날 저녁이었던 것 같다. 성질을 죽이며 걷기 운동을 하고 있을 때다. 같은 직장의 연세 드신 간부 한 분을 만났는데 딸이 사법고시 2차에 합격을 해서 기분이 좋아 한잔 하고 오는 길이란다. 깍듯이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며 헤어졌다. (다들 좋겠다.)

금요일은 아들놈 때문에 부부싸움까지 했다. 아들의 중간고사 성적이 형편없이 나왔다. 특히 입시에 반영되는 과목의 성적이 바닥이다. 마누라는 이번에도 내게 책임을 묻는다. 아들 공부 하도록 어떻게 좀 하지 않았다고 닦달이다.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내가 직접 수학, 영어 공부를 해서 가르치나? 그건 이제 안 될 말이다. 알아듣게 말을 하라는 건데 공부하는 방법에 관해서 말이야 자주 했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뭐 모의고사 성적 보면 그렇게 나쁜 성적도 아닌데 너무 닦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생쯤 되면 자신이 알아서 해야지 부모가 뭐라고 한다고 되나?) 이 마지막 생각은 마누라가 제일 싫어하는 생각이다. 좌우지간 잔소리 듣다기 내가 고함을 지르면서 오랜만에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 학원은 물론이고 학교까지도 지각을 예사로 하던 딸아이는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지 벼락같이 보따리를 사서 학원으로 내뺀다. 이번엔 아직 싸움이 덜 끝난 상태에서 기숙사에 있어야 할 아들놈이 들어온다. 토요일 학생 독립운동 기념일 행사가 교외에서 있다는 핑계로 집으로 온 모양이다. 왜 싸우냐고 묻길래 별일 아니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분위기가 냉랭하니 다시 기숙사 들어가겠다고 나간다. 기숙사에서 모두 집에 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집에 온 것이란 이야기다. 뭘 타고 가려나 싶어 전화를 하니 친구 아빠차로 간다면서 하는 말이 싸우지 말란다. 누구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눈치 없는 놈.)

토요일 오후에 아들놈은 비슷한 성적의 친구와 안동대 도서관에 간다고 내게 저녁 먹을 돈을 달랜다. 엄마에게 달라고 하지 않고 내게 달라고 하는 것을 보니 엄마에게 한소리 들은 모양이다. 매일 야간자습하고, 기숙사에서도 하고, 토요일 도서관에도 가는데 성적이 왜 나오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정말 공부를 하는지는 묻지 않기로 하고 군말 없이 저녁 먹을 돈을 주었다. 밤에 태우러 가니 부부싸움의 원인에 대해 엄마에게 들었다며 슬쩍 묻는다.

“풀었어요?”
“인마, 부부싸움 하머 며칠은 냉전을 하는 기다.”

일요일 기숙사에 데려다줄 때 당부를 하고 간다.

“토요일 집에 오기 전에 푸세요.”
“니 공부나 열심히 해라.”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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