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던 이 빠지다
월요일 저녁 걷기 운동을 하면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혀는 왼쪽 아래 사랑니(경북 지역에선 ‘막니’라고 한다)와 마지막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사랑니의 판정승으로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랑니의 힘이 조금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손가락을 넣어 조금 밀어보니 사랑니가 툭 떨어진다. 아프지도 않았고 피도 조금 나는 것 같더니 곧 멈추었다. 이도 표면에 충치 자국이 좀 있는 것 외에는 크게 상한 것 같지도 않았다. 내 몸에서 처음으로 영구치가 떨어져나갔다.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고 했는데 어버이날을 앞두고 큰 불효를 저지른 셈이다. 그리고 이제 노화의 본격적인 단계로 진입했다.
빠진 이는 잘 보관했다가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병리과에 찾아가서 조직 보존용 통에 에탄올을 넣고 보존처리를 했다. 빠진 이 속에 있는 DNA를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포르말린이 아닌 에탄올을 보존제로 써야 한다. 앞으로 빠지는 이는 모두 이렇게 보존할 생각이다. 앞으로 임플란트를 할 일이 있어도 이 치아를 이용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낼 지도 모를 일이고 혹 불의의 사고를 당하더라도 이 이를 이용해 나 자신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인류학 연구에 사용할 수도 있고 후세에 어느 연구자가 21세기 초의 구강 상재균(입 안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균)의 분포에 관한 연구를 할 때 필요한 재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좌우지간 앞으로 빠지는 이는 다 이렇게 보존할 생각이다.
내 사랑니는 좀 특이하게 난 편이다. 10대 후반부터 사랑니 자리들이 아프기 시작해서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잇몸 밖으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첫 사랑니가 완전히 잇몸 밖으로 나온 것은 30대가 된 후로 기억된다. 그리고 아직 마지막 사랑니(오른쪽 아랫니)는 일부가 잇몸 속에 묻혀 있다. 이 이가 잇몸 밖으로 완전히 나오지도 못한 상태에서 벌써 한 개가 빠진 것이다. 윗니 둘은 가장 먼저 나서는 아직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자리를 잡고 있다.
20대 후반부터 아는 치과의사들로부터 사랑니 뽑을 것을 집요하게 요구당해 왔지만 아직까지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일단 겁이 난다. 잇몸에 마취 주사를 놓는 것이 겁이 나고 사랑니를 뽑다가 안면 신경을 다칠까(아주 간혹 있을 수 있다) 겁이 난다. 또 지금 의학 이론은 쓸모없는 이라고 하지만 다음 세대에는 꼭 필요한 중요한 이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벌써 이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사랑니가 다른 이들이 자리를 지키도록 하는 기둥 역할을 하며 사랑니가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것도 이런 역할을 더 잘하게 한다는 이론도 있는 모양이다. 치의학계에서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는지는 몰라도 그동안 뽑지 않고 버틴 내게는 반가운 이론이다.
40대 초반까지 식사 후에 이쑤시개로 이 사이를 청소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걸 참으면 되지 보기 흉하게 남들 앞에서 꼭 이 사이를 청소해야 하나 하는 생각. 그런데 지난해부터 나도 식사 후에 이 사이를 청소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증상이 생겨났다. 왼쪽 아래 사랑니와 그 앞의 이 사이가 벌어지면서 뭔가를 먹고 나면 그 사이에 꼭 뭐가 낀다. 일단 음식이 그 사이에 끼고 나면 그것을 빼기 전에는 다른 일을 하기 힘들다. 식탁에도 직장에도 이쑤시개를 놓고 살게 되었다.
이 청소를 계속 하다 보니 이 사이가 점점 넓어져 혀끝으로 공간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 후론 심심하면 혀로 왼쪽 아래 사랑니를 미는 습관이 생겼는데 한 1년을 밀다보니 간격은 더욱 넓어지고 올봄에는 완전히 덜렁거리는 수준이 되었다. 한 달 전부터는 이가 박혀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얹혀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지만 두 층 위에 있는 치과를 찾지는 않았다. 낮 동안 혀로 밀다보면 이의 상당부분이 잇몸과 분리되었다가 자고 나면 제자리로 들어가는 일이 한 달 동안 반복되었다. 그 이가 지난 월요일 빠진 것이다.
삼국사기 유리왕 이야기에는 임금이란 말이 잇금이란 말에서 왔고, 이가 많은 것은 지혜가 많다는 뜻이라고 했는데 이제 지혜가 줄어들 나이가 되었나보다. 한 때 나는 남들보다 이가 많은 것을 자랑하고 다니면서 은연중에 지혜와 비례한다는 의미를 포함시키고는 했다. 위쪽 대문니 사이에 두 개의 과잉치(덧니가 아니라 일종의 양성 종양이라고 할 수 있다)가 나서 한 개는 일찍 뽑았지만 나머지 한 개는 20대 후반까지 가지고 다녔다. 스스로 ‘빗장니’라고 부르던 그 이를 포함하면 난 33개의 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31개의 이를 지니고 다니니 지혜가 있는 척 할 형편도 못 된다.
놀이 상대가 없어 심심한 혀는 새로운 대상을 찾을 것이고 아마도 완전히 나지도 않은 오른쪽 아래 사랑니(충치가 조금 있다)가 다음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랑니를 사랑니라고 하는 것은 사랑할 나이에 나기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을 것 같다. 사랑할 힘도 정열도 없어질 나이가 되면 빠지기 때문에.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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