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인
안동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으니 나는 법적으로 ‘안동 시민’이다. ‘안동 시민’이라고 해서 모든 ‘안동 시민’이 안동에서 ‘안동인’으로 살 수는 없다. ‘안동에 사노라면’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지만 나는 ‘안동인’이 아니다. ‘안동인’이 보기에는 그저 ‘들어온 놈’에 불과하다. 반면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분들 중 타도시나 타국에 사는 사람들 중에 ‘안동인’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분들이 상당히 있다.
어떤 사람이 ‘안동인’이 될 수 있을까? 엄밀한 의미에서의 ‘안동인’이 되려면 안동에 태(胎)를 묻고 뼈를 묻어야 한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뼈를 묻을 수는 없으므로 안동에 태를 묻은 사람은 일단 ‘안동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안동에 자식의 태를 묻고 자신의 뼈를 묻은 사람은 후에 ‘안동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아버지가 ‘안동인’이면서 자신은 타도시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도 안동에서 초중고 중 한두 학교를 나오거나 생활기반을 안동에 가지고 있으면 ‘안동인’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가 ‘안동인’이 아니더라도 일가친척이 ‘안동인’이면서 안동에서 초중고 중 한두 학교를 나온 사람이거나 안동에서 생활기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준 안동인’이 될 수 있다. 안동에 일가친척이 없더라도 안동 인근의 시군 출신으로 안동에서 초중고 중 한두 학교를 나오거나 안동에서 생활기반을 가지고 오래 산 사람이라면 ‘준 안동인’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안동인’이 아니더라도 안동에 오래 살면서 자신 혹은 자녀가 ‘안동인’과 혼인을 하게 되면 ‘준 안동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안동에 아무런 연고 없이 들어와 그냥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는 ‘안동인’이 될 수는 없다. 나처럼 연고도 없고 안동에 들어와 산 지 4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사람이 ‘안동인’이 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다. 아들놈이 안동에서 초중고를 나왔으니 ‘안동인’ 집안에 장가를 들면 ‘준안동인’ 대접은 받고 살게 될 가능성이 아주 조금 남아있기는 하다. 안동에 들어와 산 지 10년이 넘은 친구도 아직 이방인으로 느낀다고 한다.
안동과 관련된 글이나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이 ‘안동인’인지 아닌지 알 필요가 있다. ‘안동인’의 글이나 말 속에는 안동에 대한 강한 애정이 있는 반면 객관적 시각을 놓칠 위험성이 있고, ‘안동인’이 아닌 사람의 글이나 말 속에는 안동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있는 반면 안동의 역사와 더불어 형성된 끈끈한 애정이 약한 경우가 있다.
‘들어온 놈’이 안동 양반에 대한 책의 독서 후기를 적으려니 미리 초를 쳐야 할 정도로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잘못하면 옛 향약에 있었다던 ‘?? = 왕따’나 ‘?? = 추방’의 향벌(鄕罰)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인가?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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