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은 속일 수가 없어
지난주 C씨와 이야기하던 중에 네팔의 크샤트리아 계급에서 전해오는 재미있는 이야기 한 가지를 들었다. C씨의 성은 크샤트리아의 네팔어 발음인 체트리다.
힌두의 카스트 제도에서 교육은 브라만 계급의 전유물이었다. 정치와 군사를 담당하는 계급인 크샤트리아 계급도 교육을 받고 싶었다. 그렇지만 브라만 계급은 크샤트리아 계급에게 교육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 어느 크샤트리아 계급의 젊은이가 너무 교육이 받고 싶어 브라만이라고 계급을 속이고 교육을 받게 되었다.
어느 날 이 크샤트리아 계급의 젊은이는 자신의 계급이 들통나고 말았다. 수업 중에 개미 한 마리가 이 젊은이의 다리를 물었다. 전쟁을 담당하는 계급인 크샤트리아 계급에서는 그 정도의 일로 호들갑을 떨지 않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다. 이것을 본 브라만 스승은 그가 크샤트리아 계급인 것을 알고 쫓아내었다고 한다. 브라만 계급은 개미에게 다리를 물리면 아무렇지 않은 듯 앉아있을 수 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크샤트리아 계급이 브라만보다 참을성이 많다는 크샤트리아 계급의 자존심이 깃든 이야기인 모양이다.
한국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느 상민이 자신의 신분을 양반이라 속이고 양반과 사돈을 맺게 되었다. - 아마 조선 후기의 이야기인 모양이다. - 이 사람이 양반인 사돈과 함께 길을 가게 되었는데 길가에 서있는 버드나무를 보고 "음, 저 버들!" 했다고 한다. 그 상민의 눈에는 그 버드나무가 가래(쟁기였던가?)를 만들면 딱 좋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나.
학창 시절에 경상도 사투리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유행하기도 했다.
대구 처녀가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로 가게 되었다. 이 처녀는 서울에서는 절대 촌티 나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여름날 어느 집에 자리를 잡은 이 처녀 목이 말랐다. 당연히 표준말로 부탁을 했다. 억양까지.
"물 좀 주시겠어요?"
갑자기 물을 찾는 처녀에게 주인이 물었다.
"뭐하시게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미처 대답을 준비하지 못한 이 처녀 대답하기를
"무울라꼬예."
'마실라꼬예.'도 아닌 '무울라꼬예.'
89년 아내와 함께 망월동에 가기로 했다. 머리와 가슴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87년 대선에서 난무하던 유언비어들이 있었다. 경상도 사람이 광주 식당에 가면 밥도 안 주고, 주유소에 가면 기름도 못 넣는다는 이야기들. 머리로는 유언비어라고 생각했지만 가슴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 경상도 사투리는 쓰지 말자. 구태여 티낼 일은 없잖아?'
택시를 탔다. 분명히 표준말을 썼다.
"망월동 부탁합니다."
"??? ... 혹시 경상도쪽에서 오셨습니까?"
"(낭패감 + 불안) ...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예, 대구에서 왔습니다."
"아이구, 반갑습니다. 대구분이 망월동엘 다 오시고."
그 날은 태어나서 평생 탄 택시 중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2002년 서울에서 근무할 때다. 누군가 떡을 가지고 왔다. 열심히 회의를 하고 있는 우리 부서 직원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떡 드세요."
처음엔 반응들이 없다가 재차 권하자 누군가 돌아보며 묻는다.
"과장님 뭐라고 하셨어요?"
"떡 드시라구요."
떡을 가리키며 말하니 모두 폭소를 터뜨린다. 그들의 귀에는 다음과 같이 들렸다고 한다.
"뜩 더세요."
그 직장에서 간혹 전국에서 온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담당할 일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교육 전에 미리 하는 말이 있다. 같은 내용의 강의도 사투리가 섞이면 매우 수준이 낮아보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40년 동안 대구쪽에서 살아 조심한다고 해도 간혹 사투리가 나올테니 이해해 주세요."
강의 중에 사투리를 쓰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며 강의를 진행하곤 했다. 'ㅆ' 발음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쓰다'란 표현은 가능하면 '사용하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의 주의를 기울이면서. 어느 날 같은 부서의 어느 직원이 하는 말
"과장님은 사투리가 간혹 나온다고 양해를 구하고선 시종일관 사투리예요."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 안동넷 & pressteam.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