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스러운 취미를 찾아서

person 김종규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8-01-17 09:33

2003년 3월 잠시 살던 수도권의 생활을 접고 안동으로 옮겨왔다. 유럽에서 Downshift가 뜨고 있다는 시절이었다. Downshift란 원래는 자동차의 기어를 낮추어 속도를 줄인다는 용어지만 사회 현상으로는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생활의 여유를 가지려는 추세를 의미한다고 한다. 나야 적게 벌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안동으로 옮기고부터 퇴근 후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전 직장에서 회의와 회식이 많아 일찍 들어가기 힘든 생활을 했는데 안동으로 옮긴 후에는 퇴근 후 날 찾는 일이 드물었다. (그렇다고 근무 시간 중에도 여유가 많다는 것은 아니다.) 외지에서 갓 들어온 내가 사적으로 만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출퇴근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니 더욱 시간이 많아졌다.  

안동에 오기 전부터 회식이 없는 날에는 퇴근 후 걷기 운동, 독서, 바둑 정도를 하고 있었는데 안동에서는 뭔가 다른 취미를 개발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은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 천성이 게을러 어릴 때부터 운동과는 친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하는 걷기 운동은 좋아서라기보다는 아이들 공부 마칠 때까지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거의 의무감으로 하고 있다.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은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다. 등산, 수영, 산악자전거 등의 스포츠도 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결론이 났다. 그래, 유교의 도시 안동에 왔으니 안동스러운 취미를 찾아보자. 안동스러운 취미라면 서예, 난 키우기, 분재, 수석 등의 품위 있는 취미를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서예는 나 같은 악필이 취미로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난(蘭) 키우기나 분재는 성격도 차분하고 공간도 있어야 하는데 선인장을 말려 죽이는 게으름에다 좁은 아파트에서 네 식구가 모여 사니 키울 공간도 없다. 그럼 뭘 하지?

처음 시작한 일이 족보 분석하기다. 족보에 나오는 2천년 전 조상과 내가 같은 Y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안동 사람과 만나면 아무래도 성씨와 조상에 대해 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는 아직 여기에 대해 묻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전통을 중요시하는 고장에서는 외지에서 온 사람을 경계하는 경향이 있다는데 근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더욱 무시당할 수 있으니우선 족보에 대해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족보와 옥편을 들고 연구(?)에 몰두했다. 우선 시조부터 나까지의 직계 조상을 파악하고 파의 갈림에 대해 조사했다. 그런데 무미건조한 한자들의 집합체라고 생각해왔던 족보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유력한 조상에 대해서는 자랑을 길게 적어놓고, 좀 구린 데가 있는 조상에 대해서는 그 조상의 행동의 당위성을 자세하게 적어놓았다. 유명한 사람에게 받은 시가 올라가 있기도 하고 유명한 사람의 제자임을 자랑스럽게 밝히기도 했다. 조상들과 관련된 인물이나 사건을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자료와 비교하며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공부하다 보니 조상에 대한 글을 좀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라 왕을 지낸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는 신라계 김씨라면 모두 관심이 있을 터이니 족보에 올라 있는 그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써서 책으로 내면 제법 팔릴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가며 족보에 올라있는 조상들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이 팔리려면 제목을 자극적으로 뽑아야 할 것 같아서 '석(昔)씨의 씨를 말린 59대조 할아버지 내물왕' '거시기가 커서 슬픈 임금님 - 56대조 할아버지 지증왕' '왕위를 가로챈 48대조 할아버지 원성왕' 등 흥미 위주로 제목도 뽑았다. 그런데 몇 달 지나고 나니 밑천이 드러난다.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도 100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책이라면 내용은 고사하고 분량이 최소한 2~3백 페이지는 되어야 할 것 같은데 100페이지 정도로 책을 낼 수는 없는 일이다. 수백 페이지의 책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포기했다. 지금 생각하니 포기하기를 잘 한 것 같다. 괜히 무리하게 책을 냈으면 출판비만 날린 것이 아니라 애꿎은 나무 한 그루를 또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했을 것이다. 조상을 욕보였다고 족보에서 이름이 지워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몇 달 간의 족보 공부는 주로 밤에 하는 활동이었고 주말에 할 다른 취미 활동을 찾아야 했다. 내가 할 만한 안동스러운 취미가 어떤 것이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관광가이드에 생각이 미쳤다. 안동이란 도시가 관광 자원을 제법 가지고 있고, 아무래도 안동 인근에서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많아 보이니 퇴직 후에 안동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관광 가이드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일단 안동 인근의 관광 자원에 대해 답사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 그런 다음에는 안동으로 오는 외부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제 가이드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외국인 가이드를 하기 위해서는 외국어도 몇 가지 할 수 있어야  한다. 더욱 재미있는 가이드 생활을 위해서는 게스트 하우스도 한 채 가지면 금상첨화다.

바로 관광 가이드가 되기 위한 수련(?)에 들어갔다. 우선 안동 인근의 관광지를 답사했다. 가서 사진도 찍고 그 관광지와 관련된 자료도 인터넷에서 찾아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몇 곳은 안동대의 네팔 친구들과 같이 가서 영어로 가이드도 해보고. 일본어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인들이 안동으로 오면 기꺼이 가이드로 나서기도 하고. 연말쯤 빚을 내어 넓은 아파트로 옮겼는데 비교적 집값이 싼 안동에서 넓은 집에 한번 살아보려는 욕심도 있었지만 내심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을 집에서 재울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초기에는 관광지를 돌다가 고쳐야 할 점이 있으면 시장님께 개선을 건의하기도 하고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는 자료가 발견되면 시청 담당과에 보내기도 하였다. 그 때마다 시장님께서 전화를 해서 설명을 하거나 인사를 하는 바람에 좋으면서도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가이드가 되기 위한 이 노력들도 쉽지 않았다. 한번 간 곳을 계속 가는 것도 재미가 없고, 게으른 성격으로 인해 여러 관광지에 대한 자료 수집도 시들해졌다. 외지에서 가이드를 해달라고 오는 손님도 별로 없고 네팔 친구들도 몇 곳 가본 뒤로는 관광지를 가는 것에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일본어는 반년쯤 하고 나니 회화 위주의 고급반이 형성되지 않았다. 계속 하려면 1:1 과외를 해야 하는데 돈도 돈이지만 강사분들이 대개 기혼 여성들이라 1:1 과외 하기도 뭣하고 혼자서 외국어를 공부할 정도의 성격도 아니다. 손님이 오면 재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산 집도 손님 모시기가 얼마나 힘드는지 모르고 철없는 생각을 한다는 아내의 핀잔에 게스트 하우스로 활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나마 2년 후에는 팔고 다시 좁은 아파트로 옮겼다. 아무리 봐도 퇴직 후에 관광 가이드로 성공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안동에 온지 2년이 지난 2005년 중반쯤엔 다른 돌파구를 찾기로 했다. 그래, 어차피 퇴직 후에 시골집을 구해 농사를 지을 생각이면 미리 농사 공부나 하자. 우선 텃밭을 마련해야지. 그 때부터 지인들(그 동안 꽤 많아졌다)에게 텃밭을 구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다녔다. 노력한 보람이 있어 2006년에는 20평이 채 되지 않는 작은 텃밭을 구할 수 있었다. 친환경적으로 해보겠다고 남들 다 덮는 비닐도 덮지 않고 달려들었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주말마다 가서 열심히 풀을 뽑아도 그 다음 주말에 가면 몇 달 버려둔 밭 같다. 다른 일 때문에 한 주만 가지 않으면 그야말로 잡초밭이 되어버린다. 동네 어른들 보기가 민망했다. 수확의 기쁨이 큰 것은 확실하지만 농사는 진지한 자세로 지어야지 멀리 떨어진 텃밭에 주말에만 가는 식의 주말 농장은 자기만족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몇 평의 밭을 일구기 위해 차를 가지고 가면 아무리 친환경적으로 짓는다 해도 차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더 많을 것 같기도 하고. 현재는 농사는 퇴직 후에 시골에 집을 장만한 후에 진지하게 하기로 어느 정도 마음 정리를 한 상태다. 1년 동안 텃밭을 가꾼 효과라면 앞으로 농산물 가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게 되었다는 정도. 

텃밭을 시작할 때쯤 어떤 블로그에서 주인장이 고서 한 권을 구했다고 자랑을 하는데 약간 부러웠다. 나도 고서나 한번 모아볼까? 재수가 좋으면 귀중한 사료를 건질 수도 있고, 재테크 수단(!)으로도 괜찮을 것 같고. 고서라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올라가지 떨어지진 않을 것이니까. 더군다나 고서 수집이야말로 안동스러운 취미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래 고서 수집을 해보자. 어찌어찌 알아보니 앉아서 고서를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리 고가가 아닌 1만원 전후의 책들도 많았다. 1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구입하기 시작했다.

반 년 정도 모으고 나니 구입 방법에 대해 조금씩 감이 오기 시작했다. 좋아 보인다고 다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구매의 원칙 같은 것이 필요하다. 먼저 고가의 책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책의 가치도 모르는 초보가 고가의 책을 사다간 엉뚱한 사람 좋은 일만 시키는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 대략 3만원 정도를 상한선으로 하기로 했다. 한두 번 이 원칙을 지키지 못한 일이 있지만 대개 는 이 선을 넘지 않았다.  다음의 원칙은 아주 흔한 책은 사지 않는다. 저가로 사는 책이니 희귀본을 살 수는 없지만 같은 가격이면 가능하면 덜 흔한 책으로 하기로 했다. 명심보감이니, 논어니 하는 책들은 모르긴 해도 이 땅에 수천수만 권은 깔려 있을 터. 내가 이름을 잘 들어보지 못한 제목을 가진 책, 이름 없는 선비가 직접 쓴 책을 고르자. 목표는 일단 100권. 

1년 정도 수집해 보니 고서의 시세가 약간 감이 잡힌다. 지금 생각해도 그 가격에 잘 샀다 싶은 책이 있나 하면 지금이라면 그 가격에 절대 사지 않을 책도 몇 권 있다. 잘못 샀다 싶은 책은 대개 수집을 시작할 때 산 책들이다. 그 동안 모은 책들로는 '사요취선(史要聚選)'은 완질을 확보했고 '증보삼운통고', '규장전운', '전운옥편' '유서필지' 필사본, '간례휘찬' 같이 단권 혹은 두 권으로 된 책들이 있는가 하면 '금오승람', '백미고사', '고문진보'같이 낙질로 구입한 책들도 있다. 그 외'동의수세보원' 석판본,  '제중편' 필사본 같은 의학서들과, 개인 문집, 시집, 애감록 같은 사적 기록들도 몇 권 있고 수진본도 몇 권 구했다.

현재 50권 정도를 모았는데 70만원이 좀 더 들었다. 애초의 1차 목표의 반 정도를 모았다. 고서 수집의 장점이라면 관심 가는 책을 인터넷에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고서에 대한 상식이 조금씩 쌓인다는 것이다. 간혹 몇 자씩 아는 한자를 총동원해 내용을 짐작하는 것도 재미있고. 그런데 1년쯤 지나니 고서 수집에도 어떤 전환점이 오는 것 같다. 1,2만원 하는 책들 중에서 눈을 끄는 책이 점점 줄어든다. 대신 수십만 원 하는 책들에 자꾸 눈이 간다. 지금까지는 잘 자제하고 있는데 어느 날 대형 사고를 칠 지도 모르겠다. 일단 100권을 모을 때까지는 지금의 방식으로 가 볼 생각이다. 대신 올해부터는 수진본을 비롯한 특수 제본에 관심을 좀 가져볼까 한다. 서지학적 지식이 없으므로 내용으로는 그 가치를 알기 힘드니 모양이 특이한 책들을 좀 모아볼까 하는 것이다.

안동스러운 취미를 찾는 여정은 여기까지다. 한 우물을 파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실데 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전공 공부나 열심히 해라. 시간나면 블로그에 글이나 올리든지."

지난해 블로그에 올린 수진본에 관한 글 한 편을 조금 수정해서 소개한다. 고서 수집을 통해 이런 상상도 하며 보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

용도 1.

 >> 상례에 관한 내용을 요약한 수진절첩본

(상가집, 성복 전이라 어수선)
호상    : 아이고, 초시 어른 오십니까?
김초시 : 어험, 월천이 자네가 호상을 보는가?
호상    : 아, 예 망자가 제 재종형님 되잖습니까?
김초시 : 아직 성복을 못한 모양일세.
호상    : 아이고, 초시 어른 오셔서 제문을 써 주셔야 성복제를 지내지요.
            지금 모두들 초시 어른 오시기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초시 : 자네도 글줄이나 읽었는데 직접 쓰면 되지.
호상    : 저야 겨우 소학 읽었는데 써 놓은 글 읽는 흉내나 내지 쓸 수야 있습니까?
            당연히 초시 어른께서 써 주셔야지요.
김초시 : 원 그리 자신이 없어서야.
             지필묵은 준비되었겠지?
호상    : 예, 저 방에 준비되었습니다.
김초시 : 그럼 좌우를 물려주게.
호상    : 예, 당연히 그래야지요. 제문 쓰시는데 부정타면 안 되지요.

 >> 위의 수진절첩본을 펼친 모습

김초시 : (문을 열어 문 앞에 사람이 없는지 살핀 다음 커닝 페이펴를 꺼낸다.)
             흐음, 성복제라... 제문이 어디에 있더라? 옳지 여기 있네.
             올해가 정해년이니까 간지를 바꾸고, 경주 김공 대신 경주 이공으로 바꾸고...
             (휙, 휙, 휙 - 붓 돌아가는 소리)
             다 베꼈네. 너무 빨리 나가면 안 되겠지? 좀 누웠다 나가자.

김초시 :  게 누구 있느냐?
호상    : (헐레벌떡 뛰어오며) 초시 어른 벌써 다 쓰셨습니까?
김초시 : 제문 하나 짓는데 뭐 그리 오래 걸릴 일이 있나?
             자네 읽을 수는 있겠지?
호상    : 아이고, 고맙습니다.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여쭈러 가겠습니다. 
            우선 사랑에 가서 목이나 좀 축이시지요.
            상석에 안동소주와 데친 문어로 상 봐놓았습니다. 
            좀 있다 다른 제문들 쓰실려면 좀 쉬셔야지요.
김초시 : (꿀~꺽) 안동소주까지 준비했는가?
             100석을 하는 집이라 역시 뭔가 다르군.
호상    : 참, 초시 어른, 댁으로 쌀 한 말 보냈습니다.
김초시 : (두 말이 아니고? 부자가 쫀쫀하기는.)
             이런 사람하고는. 내가 그깐 쌀말이나 받자고 글 쓰는가?
             그러지 않아도 부조도 못하고 미안하구만.
호상    : 아이고, 초시 어른 글 부조가 최고의 부조지요.
            얼른 들어가시지요.  

용도 2.

 >> 유명 시나 명문을 적어놓은 수진본

마당쇠 : 좌수 어른, 소똥이가 심부름을 왔습니다.
이좌수 : (문을 열며) 누가 왔다고?
소똥이 : 좌수 어른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이좌수 : 오냐. 사또께서는 평안하시고? 그래 어쩐 일이냐?
소똥이 : 사또께서 이번 삼짓날 명원루에서 시회를 연다고 기별하라 하셨습니다요.
이좌수 : 알았느니. 사또께 고맙다고 전하여라. (탁 - 문닫는 소리)
             (올해도 내 시에 다들 탄복을 하겠지? 
             안동 김가 김판서에게 돈 바치고 군수 된 놈이 무슨 시를 알겠어?
             재작년엔 꽃 화자에 물 수, 작년엔 버들 류자에 흐를 류자를 운으로 했으니 
             올해는 보나마나 춘, 풍 두 글자를 운으로 내겠지 미리 한번 지어볼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하춘피탈야(何春被奪野)
             봄이 와도 봄같지 않구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누각 위에 누우니 춘심이 일어    누상동춘심(樓上動春心)
             봄날 마파람을 꿈꾸네               춘일몽마풍(春日夢馬風)

             짜식, 신임 사또가 이 곳(영천) 바람이 말 거시기 바람이라는 거 알기나 할까?
             소변 전용이 되어버린 제 놈 욕인지도 모르고 마파람을 남풍으로 알겠지? 
             조선 생기고 오언절구 네 줄에 첫 운자 다섯 번 넣은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 이 시는 이좌수의 진짜 실력을 나타내는 시로 필자의 엉터리 패러디         

이좌수 : 아이고, 사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군수    : 어서 오십시오. 시 잘 짓는 이좌수를 초대 않으면 누구를 초대하겠습니까?
이좌수 : 참봉 어른 나오셨습니까? (할애비 덕분에 음서로 벼슬하고서도 잘 난 척 하기는.) 
             최찰방께서도 안녕하시지요? (찰방도 벼슬이라고 돈 주고 산 못난 놈)  
             김초시도 오셨습니다. (진사시 열번 떨어진 돌대가리 쯧쯧..)
             박별감도 오셨구만요. (너, 내 좌수 자리 탐내는 것 다 알아.)
             정풍헌 오랜만이구만. (너, 요즘 박별감과 붙어 다닌다면서)
             안약정도 왔네. (이젠 아전 나부랭이도 향반이라고 쯧쯧, 말세야 말세.)
군수    : 자, 다들 오셨으니 제가 운자를 내겠습니다. 
            오늘은 우리 신나게 마시고 취하자는 뜻으로
            마실 음(飮)자와 술 주(酒)자로 하겠습니다.
이좌수 : (저 놈 완전 '선수'구만. 어제 지은 시 보였다간 큰 일 날 뻔했네.
            그렇다면 비장의 무기를 쓸 수밖에.)
            사또, 이 춘삼월 호시절에 딱 어울리는 운입니다.
일동    : 그렇습니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운입니다.     
이좌수 : 저는 저기 물가에서 한잔하며 시를 지어보겠습니다. 
군수    : 하하, 그러시지요.(짜식, 예상 밖이지?)

이좌수 : (품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낸다.)
              (네 놈이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도 나의 이 보물이 있는 한 어림없다.
              자, 어디 찾아볼까? 술이라면 역시 이태백이니까... 옳지 여기 있네.
              이 태백의 시를 몇 개 조합해서... 간단하군. 
              설마 저 돌대가리가 이 시들을 다 알진 못하겠지.)

 >> 위의 수진본 내용  

             行樂須及春(항낙수급춘) 봄이 가기 전에 즐겨보세
             對此徑須飮(대차경수음) 이럴 땐 마시는 게 최고
             但得酒中趣(단득주중취) 홀로 술독에 빠져
             且須飮美酒(차수음미주) 좋은 술 실컷 마실 일이지

             * 이 시는 위 사진의 책이 아닌 인터넷에서 이 태백의 시를 발췌해서 조합

군수    : 좌수께서는 벌써 다 지으셨습니까? 대단하십니다.
이좌수 : 예, 이 태백의 싯구들이 생각나서 간단히 지어보았습니다.
           (이 태백의 시 한 두 편은 알 테니, 몽땅 내가 지었다고 하는 것보단...)
군수    : 좌수께 지필묵 내어드려라.
이좌수 : (휙, 휙, 휙) 사또 여기 있습니다.        
군수    : (천천히 읽는다.)
            이좌수께선 역시 대단하십니다.
            당연히 오늘의 장원이십니다. 하하. 한 잔 받으시지요.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사랑방 안동에 연재되었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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