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브바하프왕국 재건설기

person 쑤세미
schedule 송고 : 2007-12-12 15:42
오합지졸 떨거지들의 행진곡, 중세판 무한도전

내 어릴 적 꿈은 만화가였다.
그래서 스무살 때 만화동호회에 가입했는데, 그게 좀 가관이었다.
프로를 꿈꾸는 20대 후반의 아마추어 여자가 둘, 일본 만화캐릭터에 푹 빠져있던 여고생 하나, 그리고 10등신 순정만화 여주인공의 전신컷을 그려내 겨우 가입한 어리버리 나. 나를 소개해준 한다리 건너 아는 언니는 내가 들어감과 동시에 탈퇴를 했다.
피라미든가? 여하튼 안동대 다니는 어느 만화가 지망생이 자기네 만화동아리와 통합하자고 졸라댔다. 
자신의 작업실을 같이 쓰는 조건을 내걸었기에 매번 커피숍과 분식집을 전전한 우리는 좋아라 통합을 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는 추우면 작업실 내에 있는 세면대에서 쉬를 하는 비열함도 서슴치 않는 자였다.
어쨌든 회지를 발간해 그나마 잘 팔아먹는 역할로 근근이 회원으로 연명하
고 있는 나에게 ‘넌 순정보다 명랑이

더 어울리겠다’는 진지한 조언은 꿈많은 스무살의 사기를 꺾어놓았다. 더불어 활동은 흐지부지 되고 난 탈퇴를 하고 말았다.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그들의 실력이 모두 뛰어나 대부분 활동하고 있으리라 믿고 있고 몇은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의 회지가 아직도 집에 남아있어 프로필난을 우연히 보다가 정말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캐릭터 분명한 사람들이 아웅다웅했던 기억이 새록하다.

나는 오합지졸들의 좌충우돌을 사랑한다. 그래서 게스트 없이 자기들끼리 노가리 까고, 움직이는 버스에서 중심잡기하고 아무 이유 없이 땅바닥을 뒹구는 무한도전을 좋아한다. 내가 무한도전을 좋아하게 된 것은 초창기 방송분 부터였다. 거꾸로 말해요 아하 이전의 연탄 나르기, 물구나무 서서 콜라마시기 등 도무지 도전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도전하는 이 오합지졸 인간들의 모습은 웃음을 넘어 묘한 감동까지 주곤 했다. 마나아적 인기를 벗어나 ‘주류’에 진입한 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 인기에 비해 초창기 마니아로서 좀 섭섭하긴 했으나 그래도 매주 토요일 저녁을 기다린다. ‘똑똑이들의 행진곡’보다 곡마단 서커스처럼 조금은 어설프고 알면서 속아주는 어리버리함이 좋다. ‘어진 자 이상으로 바보를 가장할 수 없다’는 속담처럼, 똑똑한 여섯명이 매주 바보가 되어 우리를 웃겨주고 있는 것이다.

<마법진 꾸루꾸루> 라는 만화를 투니버스에서 하는 애니메이션으로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유치한 장면에서 연일 목소리 쫙 깐 성우가 “용사는 무서웠다.” “용사는 고민했다.”는 등의 나레이션을 심각할 때 읊을 때 얼마나 웃음을 참기가 어려운 가를. 가령 용사가 아름다운 여인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고 구하려고 맘먹을 때 나오는 나레이션은 “용사는 용감했다.”이다. 그러나 그 옆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버티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구하기를 포기하면 이내 나레이션은 이렇게 깔린다. “용사는 비겁했다.”

문화가 획일적이지 않을 때 문화의 다양성이 공존하고 그걸 인정해줄 때 문화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4천만 넘는 인구 중에서 천만이 넘는 영화가 나오고 백만부를 넘기는 책이 나올 때면 어쩐지 무서워지기도 한다. ‘문화’가 ‘권력’이 되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꾸만 나올 것만 같아서다. 솔직히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 난 <궁>같은 작품보다야 <르브바하프왕국 재건설기>가 훨씬 재미있다.

멸망해 버린 르브바하프 왕국의 막내 왕자 ‘반’과 그림자처럼 보좌해주는 시녀 ‘코나’, 그리고 어린 아이의 얼굴을 가진 일흔넘은 사상가 ‘시안’의 정처 없는 여정을 그린 <르브바하프왕국 재건설기>는 중세판 무한도전이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품위를 지키려는 왕자와 그런 왕자가 한심한 못 하는게 없는 코나, 똑똑한 척은 하지만 동안에 기억치라 그마저도 어려운 시안의 모습이 시종일관 개그맨보다 더 웃기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방영되었는데 소제목도 재미있다. 1화 절체절명 2화 기고만장을 거쳐 3화 동상이몽 4화 백의종군 5화 기절초풍에서 25화 점입가경 26화 고진감래라 하니 소제목만 봐도 상상이 간다. 원작 만화로 보면 그 재미가 더하다. 3권밖에 안되니 구입해서 보시길. 이 만화가의 얼굴이 궁금했으나 인터넷 어디를 뒤져봐도 볼 수가 없었다.

르브바하프왕국 재건설기/ 김민희/ 3권 완결/ 서울문화사

글/쑤세미

’생활의 달인‘의 ’최강달인‘편에서 아깝게 어묵의 달인에서 밀려난 예전 달인의 상심하는 얼굴을 보며 왜 대한민국은 1등에만 열광하는 건지 심각하게 고민함. 유행에 민감하나 돈이 없어 동참하지 않으며, 모르면서 아는 척을 잘함. 며칠 전 안동대에 갔다가 ’버스 정류장‘이 어디냐고 묻는 이에게 ’내린 곳 맞은편‘이라고 얘기했다가 욕먹을 뻔함. 겨울은 좋아하나 추운 건 싫어함. 전자제품을 포함한 각종 기계를 잘 고장 내고 시치미를 잘 뗌. 학창시절 교무실 청소하다 우연히 본 생활기록부에는 ’예의 바르나 산만함‘이라고 적혀있었음. 패스트푸드점이나 영화관 스넥코너 등에서 메뉴를 잘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편임. 그래서 커피는 항상 모카라떼를 마심. 딴 건 뭔지 모르겠음. 우르르 몰려있는 고교생들을 보면 삥 뜯길까봐 무서움. 그들이 가래침을 뱉으면.........안 뱉은 곳으로 피해 감. 가식이라도 친절한 걸 좋아하며 아부를 잘함. 요즘 박지성의 복귀만 눈 빠지게 기대하고 있다긔!

© 안동넷 & pressteam.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쾌한 스토리"의 다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