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를 위하여

person 쑤세미
schedule 송고 : 2007-11-23 17:13
X세대의 로망, 푸르매 푸르매

 나는 X세대다. 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대학교를 다녔고 대장 서태지의 컴백을 손꼽아 기다리고 삐~삐리리리로 접속하는 PC통신 천리안을 쓰다가 국민의 반 이상은 쓰는 한메일을 무료 공급받아 인터넷 세대가 되었으며, 지금 애들은 모르는 교련과목도 배웠던 X세대이다. 클릭 한번으로 만화를 보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디지털과 아날로그에 반반씩 다리를 걸치고 있는 나 X세대는 역시나 수십권 옆에 쌓아두고 아랫목에서 읽는 만화를 더 좋아한다.

나의 학창시절엔 순정만화도 학원물이 대세였는데 이미라의 <인어공주를 위하여>가 단연 인기였다. 전학생이 새로운 도시에서 친구들을 만나면서 시작되는 전통적인 학원순정물의 구조에 꽃미남의 반항아가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눈물을 쏙 뽑는 내용까지 담아내고 있다. 게다가 꽃미남 주인공은 아름다운 백장미보다 평범한 이슬비를 사랑하는 내용이니 하루 건너 나는 여드름에 골머리를 앓는 우리 여고생들에게 이보다 더 멋진 스토리가 있단 말인가.

온화하고 아름다운 백장미는 전학 온 주인공 이슬비의 친구가 된다. 이슬비는 푸르매를, 백장미는 서지원을 사랑하는데 이 둘은 이름만 다를 뿐 동일 인물이다. 다리를 다친 백장미와 다리를 얻는 대신 목소리를 잃는 인어공주의 연관성을 굳이 찾지 않아도 <인어공주를 위하여>는 당시 인기절정의 만화였다. 멋진 남자친구의 등에 기대어 오토바이로 질주도 해보고 반항아를 “모두들 그만 둬”하는 내 말 한마디로 잠재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곤 했던 그 시절. 그래봤자 시내를 걸으며 새우깡봉지나 뜯는 또래 남학생들에게 실망하기 여사였지만.

이 만화는 이미라가 <호두나무가 있는 풍경>이란 작품으로 연재하다가 중단하고 <인어공주를 위하여>란 단행본으로 재탄생한 작품이다. 이미라가 누구인가. 푸르매의 등장으로 소녀들을 열광시킨 주인공 아니던가. 서지원과 푸르매는 동일인물이고 당시 우리들의 꽃미남의 상징이 된 푸르매는, 몇 년 전 자살한 가수 서지원도 <인어공주를 위하여>의 팬이어서 가명으로 이 이름을 썼다고 한다.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미라는 작품 속에 대구의 풍경을 많이 담곤 했는데 작품에 등장한 두류공원에 반해 친구들과 그곳에 갔었다. 아마도 푸르매처럼 멋진 남학생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꿈에 부풀었으나 당시 유행했던 돌청 입은 농띠들한테 걸려 눈썹이 휘날리게 도망쳤던 기억이 난다.

팬레터도 한번 보낸 적이 있는데, 집에 보면 어딘가에 답장이 있을 거다. 뜀틀을 넘는 푸르매를 보는 백장미의 눈이 하트가 되어버린 그림에 ‘성원에 고맙다’는 이미라의 친필편지. 감격해서 코팅해놓으려다가 말았던 편지. 푸르매의 반짝이는 눈빛만으로 소녀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착한 만화 <인어공주를 위하여>. 오늘은 살얼음이 잡히고 첫눈이 온다는 소설小雪이다. 쌀쌀한 이때, 뻥튀기 한바구니 담아놓고 옛 만화를 읽어보자. 뻥튀기 맛보다 더 꼬소할 거다. 

<인어공주를 위하여/ 9완/ 이미라/ 시공사>

글/쑤세미

On스타일에서 방영하는 헬‘s 키친 따위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좋아함. 프로젝트 런웨이 시즌4의 방영을 기다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를 재미나게 보고 있음. 박지성이 뛰는 프리미어리그만 시청하고 ’생활의 달인‘도 즐겨보나 방송시간대를 잘 몰라 자주 놓침. 유행에 민감하나 동참하지 않으며, 모르면서 아는 척을 잘함. 겨울은 좋아하나 추운 건 싫어함. 전자제품을 포함한 각종 기계를 잘 고장 내고 시치미를 잘 뗌. 학창시절 교무실 청소하다 우연히 본 생활기록부에는 ’예의 바르나 산만함‘이라고 적혀있었음. 패스트푸드점이나 영화관 스넥코너 등에서 메뉴를 잘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편임. 가식이래도 친절한 걸 좋아하며 아부를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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