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촌 고상안 선생의『농가월령』국역본 발간
농민과 함께하며 체득한 농사경험 지식을 바탕으로 쓴 농사 사례집인 “農家月令”이 후손에 의해 국역본으로 발간되었다.
“농가월령”은 조선 중기의 인물인 태촌 고상안(1553~1623)선생이 집필한 농서로서, 원나라 번역본인 “농상집요”, 세종때의 “농사직설”, 강희맹의 “사시찬요”, 중종때의 “농사언해” 등의 농서보다 현실적인 농서로 평가되고 있다.
“농가월령”은 농사에 관한 제반사(諸般事) 즉, 정월령(正月令)부터 12월령까지의 농가월령, 이에 누락된 농사짓는 법, 농가의 행사, 약방(藥方)에 관한 것 등을 보유(補遺)한 잡령(雜令)으로 되어 있다. 산문체의 한문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1령(令)을 2절(節)씩 나누어 지었다.
국역본에 기록된 “3월절 청명” 부분을 살펴보면 올조와 올기장을 파종한다. 잠종을 따뜻한 곳에 안치한다.
전해 가을에 마련해 둔 방초나 참깨 깍지를 소변에 담궈 무눈에 넣고 올모씨를 뿌린다. 올볍씨를 파종한다.(흙살이 깊은 곳이 좋다. 그렇지 못하면 땅에 똥을 뿌려 주는 것이 좋다) 묵은 밭이 있으면 갈아 두어 목화를 심도록 준비한다. 보리밭을 김맨다.
본문의 내용에도 잘 나타나듯이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기록 할 수 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특히 29세때(1581년) 함창 현감 재직시에는 영강에 관개(灌漑)시설인 수정보(水晶洑)를 축조하여 당시 점촌과 상주, 함창들 3~4천 두락(斗落, 약 100만평)이 가뭄 없이 평안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 한다.
농가월령의 저자인 태촌 고상안(泰村 高尙顔) 선생은 1553년(명종 8) 7월 영순면 왕태리에서 출생하였다. 21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26세때에는 충청도 성환도 찰방에 제수되었다. 40세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교에 있던 왜적과 싸우기 위해 의병을 창의하고 대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이후 지례 현감, 함양 군수, 울산 판관 등의 벼슬을 지내고 57세에 40여년간의 관직을 떠났다. 이후 벼슬에서 물러난 뒤 농가월령, 효빈잡기 등의 저술을 남기고 향년 71세(1623)에 세상을 떠났다.
태촌의 저서인 “농가월령”과 “효빈잡기”는 후손에 의해 국역되어 오는 3월 17일 (목) 오후 2시 궁전예식장에서 국역본 발간회 행사를 가진다. 농가월령은 현재 유림단체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고재하 후손이, 효빈잡기는 성균관유도회장을 맡고 계신 고영조 후손이 번역하였다.
조선중기에 백성들과 함께하며 실용적인 농사서를 만들어 보급했던 태촌선생의 농민사랑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며, 효빈잡기를 통해 삶에 대한 교훈을 읽을 수 있으며, 우리지역에 이렇게 훌륭한 분이 계셨다는 자체만으로 지역민들의 귀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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