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김C의 색즉시공-보전을 통해 보존을 실천하는 송곡고택

person 바람난김C
schedule 송고 : 2011-03-09 10:54

올해 필자에게 의뢰된 문화필의 주된 목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고택을 소개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이 지역의 산재된 문화재를 많이 알고있는 지인으로부터 '송곡고택(松谷故宅)' 이 적당할 것 같다는 추천을 받아 한국국한진흥원이 위치한 도산면 서부리를 찾아 보았다.

독자 여러분이 이곳 송곡고택을 찾는다면 아마도 의아함을 느낄지 모르겠다.  첫째, 담장으로 둘러쌓여 있지 않아 의외의 모습이다라고 느낄것이고 둘째, 마당에 왜 다육식물을 키우고 있지? 하는 의구심이 들것이다.

필자 역시 왠지 찌뿌듯한 마음에 거주하는 분과의 몇 마디 대화에 바로 '왜 고택이 이렇습니까?'라는 화두를 던졌으니 말이다.



보존과 보전을 아시는가?

사람들은 보존(保存)이라는 의미는 알고 있지만 보전(保全 또는 補塡)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것 같다는 거주자의 설명이다.  보존이란 '있는 그대로를 잘 보호하여 남기는 것'이라면 보전은 '원형을 온전하게 보호하고 유지하지만 삶 속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 보존하는 것'이다라고 거주자의 설명과 함께 과연 거주하는 사람이 없이 또는 후손에 의해 지극히 관심을 받아 관리되지 못한 고택들이 잘 보존되고 있을까요? 라는 반문을 받았다.

필자 머리속에 띵~하는 소리가 난다.   얼마전까지 본 필자도 보호받고 있는 문화재와 그렇지 못한 문화재는 큰 차이가 난다라고 소개한바가 있었지만 보존과 보전에 대한 개념은 없었던 터라 크게 깨달음을 받는 순간이었다.  그런 거시적 안목 없이 상식적인 눈으로만 바라보았다면 아마도 송곡고택에 대해 씁쓸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을지도 모른다. 

보전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두 가지의 보전이 눈에 띄었다. 
보전(保全)은'온전하게 잘 보호해 유지한다'는 뜻 외에 보전(補塡) '부족한 부분을 보태어 채움'이라는  뜻과 전자의 보전(保全)은 문화재의 표현에 많이 쓰이지만 후자의 보전(補塡)은 환경과 생태계에 많이 쓰인다고 하니 거주자는 두 가지 보전(保全과 補塡) 모두를 취하고자 했었고 보전 없이 보존은 힘들다는 진보적 관리개념을 두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거주하게 된 사연은?

평소에 고택을 좋아 했었고 이런저런 여행 중에 이른 나이에 귀향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 송곡고택과 인연이 닿았다고 한다.  평범한 도시 생활을 접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욕심을 내어 둥지를 틀어 삶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버팀목은 흔쾌히 따라준 아내의 덕분이었다고 한다.  보존만 되고 있는 공간을 탈피해보고자 본체와 동떨어져 있는 듯한 별당 사이의 향나무를 정리하고 이것 저곳의 나무 또한 정리하여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어 보았다고 한다.  안채와 사랑채의 분리된 옛 공간적 개념을 현대의 삶에 맞는 용도로 활용하고자 쉴틈없이 손발을 움직였다고 하는 거주자 이현우씨는 평산신씨 송곡파의 종택인 이곳 송곡고택의 후손은 아니다.  연로하신 종손과 젊은 의욕이 합쳐져 관리가 되고 있다한다.



송곡고택의 특징을 찾는다면..
웹서핑을 통하거나 책자를 통해 얻어지는 고택의 정보는 ㅁ자 구조에 정면 몇 칸, 측면 몇 칸 그리고 간략한 유례에 관한 문헌적 정보가 전부 듯이 이곳 송곡고택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숨 쉬고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가 가미된 고택의 친숙함은 찾기가 어려워 일반인들의 목마름을 조금이나마 달래보고자 이곳의 특징을 문헌적 정보 이외의 것을 요구해 보았다.

고택을 소개함에 있어 좀 어울리지 않을 수 있지만 우선 보시는 바와 같이 고택 마당에 다육식물을 재배 하는 게 특징이고 백범 김구선생님의 글씨현판과 박영효 선생의 글씨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하겠다.
물론 박영효 선생은 태극기를 최초로 만들었네 그렇지 않네 친일이네 꼭 그렇지만 않다라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한 시대의 큰 등장인물 두 분의 글씨가 있다는게 이 고택과의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아이러니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관계성을 자신도 들어보지 못했고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본 필자 글씨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백범선생님의 글씨라고 하니 현판을 유심히 보고 사진으로 담아본다.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어 이전되기 전에는 비옥한 토지를 소유하고 지방유지로서 기계가 대단했으니 백범선생과의  관계가 분명 있을 것으로 추측은 되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권력구조가 바뀌니 그 역사성도 희석되어 관계성도 묻히지 않았을까하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백범선생님의 글씨는 본체에 걸려 있으며 박영효선생의 글씨는 별당에 걸려있다.

이현우씨는 그래도 고택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뺄 수는 없다면서 하나의 특징을 더 소개한다.
송곡고택은 사랑채 중심의 구조이고 그 특징은 칸칸이 나뉘는 한 칸의 개량적 단위 외에 반칸이라는 단위가 있는데 그것은 서재와의 동선을 원할하게 만들기 위함이라 한다.  이런 집의 구조적 특징을 잘 살펴보면 사랑채 중심의 고택임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자세한 설명은 들었지만 지면을 할애해 설명하면 딱딱한 소개가 될 것 같아 특징만 소개해본다.

문헌정보에 보면 별당 앞에 연못이 있다고 나와 있으나 지금은 메워져있고 다육식물을 재배하는 하우스 앞에 자그마하게 연못을 흉내내어 놓았다.  고택을 둘러쌓고 있어야할 담장도 수몰로 인한 이전 때문에 산비탈의 땅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나온 현상일거라고 한다. 

송곡고택의 부속건물인 뒷산위의 용암정은 원래 위치에서는 바위위에 세워져 있었지만 이전되면서 산위에 올려졌고 뒤로는 한국국학진흥원 위치하고 앞으로는 안동호를 안고 있다.
이전비를 살펴보니 1975년 12월 31일 한영사라는 회사에 의해 이전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육마실 송곡고택..
앞서에 언급했듯이 보전이라는 관점에서 송곡고택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보존이라는 절대적 관점에 목메어 고택을 유지하고자 할 때 현실적으로 부딛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자체 또는 문화재청에서 예산을 내려주지 않으면 무엇하나 변변하게 보수할 수 없고 집안의 힘으로 보존하기에는 지켜줄 젊은이가 없다.
고택이 늙은 만큼 지킴이들도 늙어가고 생계를 위해 도시로 도시로 탈출하는 젊은 일꾼들을 돌려세울 수 없는 현실에서 문화재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귀향인이 있다는건 큰 행복일거라 생각해본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근엄함만 있는 고택보다 생기 넘치는 송곡고택을 찾아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다육이 기지개를 펴고 새장속의 새는 노래하고 마당에는 아이들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한잔 들이키는 막걸리가 생각난다는 말에 친구녀석은 냉큼 달려가 막걸리를 사들고와 이내 살아가는 이야기로 사진 이야기로 또 안동의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평상에 눌러앉아 있게 되었다.

고택의 바깥양반을 붙잡고 있는내내 안주인은 다육마실 챙기기에 여념이 없어 미안함 있지만 어쩌겠는가 술 한잔 들어간 것을^^ 

우리 보다 해가 먼저 누워자빠진 시간이 되어서야 방안으로 자리를 옮겨 안동소주로 또 양주로 바꿔타기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중년의 젊음들을 걸쳐보니 고택의 시간은 거꾸러 거꾸러 흘러 점점 젊어지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 송곡고택은 서부리에서 가장 젊다.  서부리 사람들 중에 가장 어린 사람이 있어 젊고 웃음이 넘쳐서 젊고 말이 떨어지기 전에 끓길 줄 모르고 받아치는  이야기가 있어 송곡고택은 점점 젊어지고 있다.

아이들과 고택 나들이를 할 요량이면 아이들에게도 흥미거리가 될만한 이곳 송곡고택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이곳을 찾는다면 꼭 다육식물을 하나쯤 구입해주는 쎈스도 발휘해주시길 바라면서 고택소개를 마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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