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속이야기 - 부처와 용의 배틀로 생긴 폭포
부처와 용의 배틀(battle)로 생긴 폭포
본 사진과 도연폭포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
1. 도연폭포
이 폭포는 망천에서 반변천을 따라 10㎞ 정도 올라가면 있었는데 지금은 임하다목적댐 건설로 수몰되었습니다. 이곳은 길안면, 임동면, 임하면의 경계 지점으로 안동 팔경 중 으뜸으로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이 폭포는 물줄기 밑이 마치 움푹한 질그릇 모양처럼 생겼다고 도연폭포라 하며 폭포 밑의 소(沼)는 명주구리 하나를 푼다고 할 정도로 깊다고 합니다. 또한 그 속에는 천년 묵은 이무기가 산다고도 전합니다. 이 폭포는 그 높이가 4m에 불과하지만 낙동강 지류의 수 개의 폭포 중에서 가장 으뜸입니다.
격진령(隔塵嶺)은 폭포 옆에 깎아지른 듯이 높이 50m, 길이 300m의 바위산으로서 기화요초(琪花瑤草: 선경(仙境)에 있다고 하는 곱고 아름다운 꽃과 풀)와 산마루에 솔숲을 얹고 있는 폼이 천하절색입니다. 격진령을 아늑히 둘러 싼 높고 짙푸른 산색과 검은 벼랑 밑을 미끄럽게 흐르는 파란 물빛과 햇빛 아래 더욱 하얀 자갈 빛과의 앙상불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식을 자아냅니다.
이 산을 격진령이라 부르게 된 것은 병자호란의 굴욕에 비분강개(悲憤慷慨)한 선비 표은 김시온(金是?) 선생이 여기 도연 위에 깊이 숨어 산수에 마음을 붙여 울분을 달래며 학문을 벗하여 소요자적(逍遙自適) 했는데 얼마나 세상이 귀찮았으면 격진령이라 했을까. 세상 사람들은 그를 숭정처사라고 하며 여기에 그가 은거했던 송정(松亭)과 와룡초당이 있고 숭정처사 유허비도 있는데 그래서 이때 붙여진 이름입니다.
2. 안동팔경
① 仙魚暮帆(선어모범 : 황혼 때 선어대 고깃배의 돛대)
② 歸來暮雲(귀래모운 : 귀래정의 저녁 노을)
③ 西岳晩鍾(서악만종 : 서악사의 저녁 종치는 풍광)
④ 臨淸古塔(임청고탑 : 임청각과 고탑)
⑤ 鶴駕歸雲(학가귀운 : 학가산을 휘감는 구름)
⑥ 燕尾細雨(연미세우 : 제비원 연미사에 내리는 가랑비)
⑦ 河回淸風(하회청풍 : 하회 소나무 숲의 맑은 바람)
⑧ 陶山明月(도산명월 : 도산서원에서 바라보는 밝은 달)
3. 이야기가 전하는 곳
안동지역
4. 전하는 이야기
본래 일월산과 주왕산에서 근원하여 영양, 청송 두 고을 물을 모아 흐르는 반변천이 여기 도연에 이르러 그만 마당재(도연폭포 북쪽 봉우리)에 이어진 격진령이 막혀 급히 좌회전으로 꺾여 격진령을 안고 돌아 선찰암 앞으로 흘렸는데 허구한 세월에 세찬 물줄기가 격진령과 마당재가 이어진 허리를 들이받아 기어이 산허리를 무너뜨리고 곧바로 쏟아지게 됨으로써 도연폭포가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금의 폭포 밑 깊은 소에 사는 용(龍)과 선찰암에 있는 부처와의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용은 물을 바로 흐르게 하자는 것이고, 부처는 그 본래대로 돌아 흐르게 그냥 그대로 두자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날 계속 설전을 벌였으나 그 말싸움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가 난 용은 자기 꼬리로 산을 힘껏 내리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돌아 흐르던 강물이 바로 흐르면서 폭포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큰비로 물이 불어나면 폭포 목중이가 미처 수용을 못해 나누어진 한 갈래가 옛길을 되찾아 격진령을 감아 흘렸습니다.
※ 이 이야기는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 박장영님은 현재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에서 학예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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