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옥의 고향편지 (16건)

제비원 소주를 아시나요?
친애하는 투(TO)양 오늘은 유년시절 첫 소주를 마신 기억이 생각나 편지를 드립니다.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시쳇말로 주당이셨습니다. 특히 사람 좋기로 유명한 할아버지는 늘 도포에 상투를 올리고 큰 갓을 쓰고 동리를 다니셨죠.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부터 내 임무는 식사 때를 맞춰 할아버지를 찾아 모시고 오는 거였죠. 친구분 댁 대문간에 서서 "할배~ 할배 저녁 자시러 안 가시니껴? 야~아 ?" 하면 "오이~야" 말씀만 하시고 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할배요~” “할배요” 독촉하고 또 독촉
2007-06-20

부서지는 먼지 속에 발가벗고 달리는 아이들
친애하는 민(旻, 하늘 민, 제게는 여러분들이 하늘 이십니다 ^^*) 민의 성원에 힘입어 이렇게 배 옥이라는 이름에 대한 사연을 올립니다. 친애하는 민, 삼십여년 전쯤 될 겁니다. 제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아이들은 그곳을 공굴다리라 불렀죠. 그 말이 콘크리트 다리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여름이 오기도 전인 유월 초부터 아이들은 빨간 고추를 내어놓고 공글다리에서 멱을 감았습니다. 사내놈들은 그나마 물이 깊은 곳에서 놀았고 계집애들은 물이 얕은 곳을 찾아 멱을 감았죠. 아스팔트길이라고는 사십여 리 떨어진 읍내까지
2007-06-19

아까시 꽃 향기는 날리고
아까시 꽃향기는 날리고 차만 타면 어지럼을 토로하는 한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28년 전 마흔이 되던 어느 날 어지럼증이 생겨버렸다. 심지어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기만 해도 울렁증으로 괴로워하는 어머니는 그래서 28년 간 동네 밖을 나가 본 적 없다. 그러던 어머니에게 고민이 하나 생겼다. 막내 딸 결혼식이 코 앞에 다가왔는데, 결혼식에 참석하자니 막막할 뿐이다. 속 모르는 자식들은 등에 업히거나, 가마를 타거나, 배를 타거나, 심지어 수면제를 먹고 가자고 한다. "해남에서 목포까정... 이 백리인데..... 걸어가면 얼마나 걸
2007-06-09

L형에게(권정생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L형에게 L형 권정생 선생께서 끝내 운명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전날 천상병 시인에게 범했던 어리석음을 다시 한 번 범하는 것 같아 못내 가슴이 아팠소. 벌써 2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미아리 텍사스촌이 훤히 보이는 골목 끝 다쓰러져 가는 공방에서 10년 선배와 함께 금속공예라는 너무나 과분한 일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L형은 내게 ‘평생 망치 한번 쥐어보지 못한 놈이 하다하다 할 짓이 없으니 이젠 망치질까지 하겠냐! 며 혼을 내셨죠? 그래도 그 시절에는 그 방법 외에는 이 지긋한 안동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2007-06-05

친애하는 투(to)양
친애하는 투(To)양에게 오늘 인터넷을 뒤지다 불연 파짜꼼에 대한 추억이 생각나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초등학교 2, 3학년때 일이니 거의 20여년도 더 지난 일입니다. 아마 당신도 잘 알고 있을 법한 기억 한 토막이 생각나 급하게 편지를 씁니다. “왜 이싸?” 초등학교 2, 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몸집이 좋은 중늙은이는 늘 꾀죄죄한 모습으로 시장 좌판 한구석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파짜꼼을 만들어 팔았죠. 매운 연탄불을 피우고 나면 언제 씻었는지도 모를 컵 서너 개와 까맣게 익은 국자 몇 개, 설탕 한 봉과 소다 한 봉,
2007-05-29

K시인에게(용왕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
K 시인에게 수몰로 고향을 잃었지만 떠나지 않고 남은 이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있다면 물밑 고향이라도 늘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른 아침 출근을 하면서 물밑의 고향을 바라보며 먼저 간 이들을 생각합니다. 수몰되기 전 채꺼리 마을이 훤히 보이는 산자락(지금의 중평 신단지)에서 상여가를 부르던 해바우와 그 아낙 이야기 같은 사연 말입니다. 멀쩡한 반가의 며느리이자 안주인인 한 여인이 어느 날 홀연, 이상한 치매가 들어 예순이 넘은 나이에 과거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상여가를 부르는 늙은이를 찾아 살림을 차리고 구걸로 연망하던
2007-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