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가 그립다

person 배옥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7-09-03 12:18
바리깡 그 끝나지 않은 추억 속으로

친애하는 투(TU)

 머리를 감고 말리면서 앞머리가 눈을 가려 정리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벌써 멀리를 자를 때가 되었나 싶어 옆머리를 보니 아직 옆머리가 귀를 덮지 않아 당분간 머리를 자르지 않아도 되겠다! 여겼죠.

머리가 유난히 커 보이는 큰 아이는 머리카락마저 밤송이마냥 솟구치며 자라 그야말로 헬멧을 덮어쓴 것 같죠. 조금만 자라도 머리가 길어 보이고 정리가 안돼 보이는 아이는 두주에 한번 쫓기듯 근처 미용실에서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르고 나옵니다. 그렇게라도 자르지 않으며 밤송이 같은 머리에 찔려 피가 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하죠.

그러나 문제는 시골이라서 미용실 머리 자르는 솜씨가 장난 아니라는 거죠. 매번 헬멧 같은 머리를 한 아이를 미용실에 보내고 나면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어렸을 때는 머리가 길던, 짧던 신경 쓰지 않던 애가 이젠 제법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니 뻔히 보이는 시골 미용실 솜씨로는 아이의 머리모양이 그려지고도 남습니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에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마음도 있었고 또 예전부터 아이 머리를 직접 깎아 주고 싶다는 생각에 기어이 전기 커트기를 하나 사고야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도 신기하다는 듯이 신이나 아빠의 손에 머리를 맡기던 아이가 점점 괴상막측 해지는 머리에 점점 얼굴이 벌겋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기 커트기라는 것이 생각과는 달이 조금만 잘못 지나가면 꼭 머리 한 구석이 쥐가 뜯어 먹은 것 같이 움푹 들어가기 일쑤고 또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머리가 점점 짧아진 다는 것이 문제였죠.

이건 뭐 어디에서 연습이라도 한번 해보고 덤빌 것을 어디 마땅히 연습도 없이 홈쇼핑에서 물건을 받자말자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는 아주 당당하게 밀어제친 것이 글쎄, 결국 아이는 빡빡 머리를 깎고 나서야 끝이 날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나와 웃고 제 머리 모양을 만져보던 아이가 결국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는 다시 전기 커트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젠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군대 잔재가 채 사라지기 전인 1970년대 아이들의 머리는 거의 상고머리라고 불리는 빡빡이였습니다. 가뜩이나 도회지 한번 구경하기도 어려웠고 TV도 열 가구에 한두 집 있을까 말까 상황에서 상고머리 외에는 다른 머리 모양이 없는 줄 알고 지내던 시절이었죠.

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돼지 서너 마리가 마당에서 뛰어노는 그림이 한 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고 조금 세련된 집이라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로 시작되는 푸치킨의 “삶”이라는 시가 벽면 한쪽을 장식하고 있었죠.

문을 열고 들어서면 깜박 졸다 깨어난 이발사가 하얀 가운을 걸고 입가의 참을 닦으며 의자 손잡이에 나무판자를 걸치고 나면 아이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 나무판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기도 합니다.

‘오늘은 제발 머리칼이 무사하기를“ 사용한지 오래되고 제대로 손을 봐두지 않은 바리깡은 곧잘 머리를 씹으며 생으로 한 움큼씩 머리를 뽑아내었죠. 그렇게 머리가 뽑힌 곳은 머크로크롬(빨간약, 옥도정기, 아까징끼라고 불렀습니다)을 떡칠을 해도 기계충이라는 무사시한 놈을 직면해야 했습니다.

아이들 머리는 바리깡의 역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멋을 내는 머리가 아니기 때문에 앞머리 가운데부터 고속도로마냥 달리기 시작하면 불과 5분도 채 되지 않아 아이들의 머리는 우수수 바닥에 쌓여갑니다. 바리깡이 지나고 나면 커다란 가죽 끈에 날카로운 면도칼을 갈죠. 그 서늘한 느낌이 그다지 싫지는 않았던 같습니다. 이발사의 손짓을 한 번씩 흉내 내 보곤 했으니 말입니다.

신문지를 잘라낸 종이는 입에 물고 거품솔로 비누 거품을 내곤 귀 옆에서부터 뒷머리까지 골고루 거품을 바르고 따끔거리는 면도날이 지납니다. 가끔 피를 봐도 별 대수롭지 않습니다. 워낙 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면도가 끝이 나면 빨래비누로 머리를 감습니다. 빨래비누가 머리를 몇 번 지나고 나면 손톱까지 세운 이발사가 아이 머리를 벅벅 치대죠. 두어 번 찬물에 헹구어 주고는 상처부위에 다시 머크로크롬을 발라주는 것으로 이발이 끝이 납니다.

이젠 전기커트기에 밀려 사라지고 있지만 가끔은 머리칼을 뽑아 먹는 바리깡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오늘은 예전에 다니던 단골 목욕탕에 들려 바리깡의 기억을 살려보고 싶습니다.

 2007년 9월 3일      배 옥 배상

*배옥 자유기고가,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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