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제비는 어디 갔을까요?

person 배옥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7-08-20 15:39
남도 갈대밭에서 만난 식구

제 비

일여덟 달 같이 살면

식구가 될 꺼야

한 지붕 이고 자식 낳고 살아가니 가족이지

때 되면

훌쩍 떠났다

원망일랑 않겠지


이듬해 잊지 않고

돌아 와줘 고마워

훤하게 아랫대로 이어진 정이야

무시로

재재 거리는

텃새와는 다르지


둥그런 처마 없는

집이라서 떠났니

해 가면 오겠지, 오지 않는 식구들

갈대밭

몸 풀고 누운

내 집 오던

그 애니


졸저. 제비 전문

 
친애하는 투(Tu)에게

몇 해 전 남도 쪽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바다와 마을을 사이에 두고 넓은 갈대밭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죠. 낮부터 마신 술에 불콰한 얼굴을 하고 일행들은 술도 깰 겸해서 갈대밭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바닷바람이 불어오자 일제히 사그락대며 말을 걸어오는 갈대들의 속삼임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죠. 갈대밭이 늪지거나 물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단단한 대지를 딛고 너른 공터에 빼곡하게 자라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일행 중 한명이 갑자기 갈대밭 중앙으로 나가갔습니다. 말릴 틈도 없었죠.

그러자 갑자기 일제히 날아오르는 새 떼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새까맣게 하늘로 솟구치는 붉은 검불과도 같은 그것은 제비떼였습니다. 일제히 날아올라 재재거리는 소리에 일행은 감탄을 쏟아냈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제비가 숨어 있었을까요? 아니 그보다 처마 밑을 버리고 갈대밭이라니요. 왜 제비가 갈대밭에 살아갈까요?

그러고 보니 시골에서도 제비보기가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임하호에도 지금은 제비 보기가 어렵습니다. 유연한 동작으로 하늘을 나는 참 참한 새, 우리 새를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몇 해 전 어느 도시 가정집 거실에 둥지를 튼 제비가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제비를 보고는 여태 제비를 보지 못한 것 같군요.

그 많던 제비는 어디로 갔을까요? 걱정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흥부놀부전을 읽고 제비가 어떤 새냐고 물어오면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 줄까요? 바로 문만 열면 재재거리는 식구들을 잃고 처마도 없는 집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함부로 상상 속에서 제비를 그려내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제가 살던 유년의 시골엔 대부분 초가집이였죠. 어쩌다 기와집이 있었고 집집마다 식구 수만큼 제비도 함께 살았죠. 그렇습니다. 식구입니다. 함께 밥을 먹은 사이, 매일같이 밥을 먹을 만큼 친한 가족을 식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린 이 식구를 잊고 살아가면서도 식구가 곁에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 집에 오던 제비는 제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기와집으로 개량하고 나서도 다시 찾아왔습니다. 집이 바뀌어 행여 못 찾아올까 걱정했는데 잊지 않고 기와 처마 밑에 예쁜 집을 새로 짓고 가족들이 모여 살았죠. 그리고도 오랫동안 대를 이어 우리 집을 찾았죠. 이름만 없었지 식구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늘도 시내에는 제비 한 마리 날지 않습니다. 제가 사는 시골에도 그렇구요.

오늘은 갈대밭에 몸 풀고 누운 내 식구들이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배옥 자유기고가,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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