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푸른 내 어머님이 걸으시던 산 길

person 배옥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7-08-13 16:04
개밥바리기 떠오르면 주린 남매 칭얼거리고

친애하는 투(Tu)에게

 새벽밥을 지어 드시고 포장이 되지 않은 산길을 쉬지 않고 걸어도 한낮이 되어야 진보 시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막내 여동생을 등에 업고 머리엔 커다란 소쿠리를 지고 어머님은 그렇게 구절양장 가랫재를 넘어 팍팍한 산길을 돌아 진보장까지 30여리 길을 쉬지 않고 걸어 다니셨습니다. 뻘건 먼지를 피우며 힘겹게 고개를 넘는 버스를 타면 30분도 되지 않는 거리를 어머님은 몇 푼의 차비를 아끼기 위해 내내 걸어 다니셨습니다.

 막내 여동생은 그렇게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어머님 등에서 발버둥을 쳤답니다. 돌도 되지 않은 아이는 어머님 등에 업혀 힘든 고갯길 내내 뒤로 넘어질 듯 울어댔답니다. 머리에 소쿠리를 진 어머님의 걸음은 한 발자국 마다 땀이 비 오듯 흘렀고 눈물이 섞여 흘러내린 땀은 이내 저고리 안섶까지 젖어들게 했다네요.

 그렇게 한나절을 걸어야 진보장까지 닿을 수 있었답니다.

점심 대신 냉수에 간장 조금 타서 들이키신 어머님은 준비해 오신 여름 채소를 난전에 내어 팔았습니다. 그렇게 물로 허기를 잠재우신 어머님은 막내에게 젖을 물리고 난전에 앉아 소쿠리 가득 가져온 어물을 팔았습니다.

 소쿠리 물건은 서너 시가 훌쩍 넘어야 팔렸고 어머님께선 소쿠리 가득 여름 채소를 사서 머리에 지고 내처 그 고갯길을 돌아 오셨다고 합니다.

밤이 늦도록 걸어야 했던 어머님은 녹초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셨고 밤늦도록 밀린 빨래와 집안일을 하시고 자정이 넘어서야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새벽닭이 울면 시어른 새벽밥을 지어놓으신 어머님은 식은 누룽지를 찬물에 말아 삼키시고 막내를 엎고 또다시 걸으셨습니다.

 30여리 버스도 다니지 않는 산길을 돌아가시는 서른의 푸른 내 어머님의 뒷모습이 아련합니다. 걸음마도 겨우 내딛던 어린 동생과 아침만 먹고 나면 해질 때나 되어서 집으로 들어오던 나는 서른의 어머님의 행상을 가슴으로 느끼기에는 너무나 어렸습니다.

 벽돌공장 사업이 친구의 배신과 이웃의 투서로 문을 닫은 아버님은 허망함을 술로 달래셨고 서른의 어머님만 홀로 산길을 내쳐 걸으셨죠.

이제는 허리마다 나사못을 걸어둬야 하는 예순의 어머님은 지금도 가끔씩 행상 다니던 기억이 나시는 가 봅니다.

 개밥바라기(여름날 늦은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서 제일 먼저 보이는 저녁별, 농사일로 바쁘게 지내던 농부가 돌아와 저녁을 하고 주린 강아지가 비로소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시간에 돋는 별을 칭함)가 돋고 무거운 짐을 몇 해나 이고 등에는 떼를 쓰던 어린 동생이 매달려 먼지 나는 시골길을 돌아오시는 어머님을 기다리던 어린 남매는 칭얼거리며 엄마만 찾습니다.

하루 종일 뙤약볕을 걸어 곤한 내 어머님은 잠시 쉴 틈도 없이 저녁을 짓고 늦도록 집안일에 허리의 나사못을 키우십니다. 칭얼거리던 아이도 잠이 들면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밤새 눈물로 지새다 늦은 잠을 청하던 내 어머님, 서른 해가 지난 여름날 긴긴 해가 지고 나면 타지에 나간 떼를 쓰며 매달리던 막내가 그립다며 여름이 가기 전에 꼭 한번 다녀오고 싶다 말하십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창창한 소나무 밑둥 퍼런 녹 같은 이끼에게 모두 내어주고 살아가는 것이나, 누렇게 빛이 지워진 갈잎 돌아가지 못한 시간 위로 다시금 버리며 살아가는 것이나, 어쩌면 시퍼렇게 달아오른 그도 가슴은 뜨거울 거라 생각이 듭니다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비밀처럼 원시림 입고 늘어서 가시덤불 앞세우고 켜켜이 막아서는 안간힘,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이야기, 버티지 못하고 길을 내어주고는 터무니없이 정상까지 허락해 버린, 신령으로 위장한 그도, 어쩌면 나보다 더 그리워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졸저 - 이제야 알았습니다, 전문

 이천칠년 8월, 그대가 몹시 그리운 어느 날

 배 옥 올림

  *배옥 자유기고가,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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