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바 헌 집 줄께 새 집 다오
일곱 살 유년에서
자라지 못한 아이
문밖에서 서성이며
두꺼비를 부른다
“두꺼바 두꺼바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꺼바”
까막고무신 아이들
세상을 배우는 동안
눈 먼 꿈 삼키며
덩치만 키운 아이
두꺼비 버린 둥지에 저 홀로 서있다
서른 해 훌쩍 지나
아이의 모래밭
칠월의 바다만큼
시려만 오는데
간극을 좁히지 못한 기억하나 울고 있다
(졸저 일곱 살 아이 전문)
친애하는 투양~
마당에서 멀리 않은 곳에 맑은 샛강이 흘렀죠.
아니 마을을 두고 동쪽에서 흘러온 샛강이 서북에서 내려온 샛강과 합류하면서 마을을 따뜻하게 안고 돌아가는 흔한 농촌마을의 모습이었죠.
남쪽을 흘러가는 개여울은 초등학교에도 못간 아이들이 서도 가슴에도 못 미처 초여름부터 늦여름까지 아이들의 놀이터로 쓰였습니다.
너른 강변에는 아이들 소꿉놀이 하기에 적당한 조약돌이 지천으로 깔려있었고 간혹 보이는 모래밭엔 키 작은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고 놀았습니다.
조금 큰 아이들은 물 속을 여유롭게 유영하는 물고기를 쫓아다니며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아 올리곤 했죠. 때로는 아이들 손바닥보다 큰 피라미가 잡혀 올라오기도 했고 이렇게 잡은 물고기는 수양버들을 잘라 만든 꿰미에 끼여 덜렁거리기도 했습니다.
한 자 남짓한 나무 꿰미에 피라미가 거짓 차오르면 아이들은 물가에 불을 피우고 소금을 뿌려 구워먹기도 하며 놀았죠. 강에는 늘 마을에서 풀어놓은 오리 떼가 함께 물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았는데, 가끔씩 아이들은 잡은 쌀미꾸라지라도 던져주면 서로 먹으려고 싸움이 일기도 했죠. 참 맑고 건강한 하천은 여름내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한 겨울에도 아침을 깨우는 세수터가 되기도 했었죠.
아마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오염되기 시작한 하천은 수몰이 되기 전까지 거의 마을 주민 쓰레기장으로만 활용되었죠. 늘 연탄재가 넘치고 온갖 생활 쓰레기들로 넘쳐나던 하천은 봄부터 겨울까지 내도록 악취 나는 물이 흘렀고, 이상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완전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딱 고만고만하던 시절입니다.
어느 동네마다 있을 법한 뇌성마비 친구가 제게도 있었습니다.
또래 아이들 보다 머리 하나 이상 큰 친구는 한상 입가로 침을 흘리고 다녔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춤물이, 춤물이’하며 놀렸고 아이보다 두어살 많은 누나는 그때마다 화를 내며 우리를 쫓아 다녔죠.
‘춤물이’라고 불리는 아이는 또래아이들 보다 두어 살은 많았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늘상 놀려도 친구가 없었던 아이는 우리 옆을 떠나지 않고 기웃거렸습니다. 아이들이 모여 두꺼비집을 짓고 깜장색 고무신을 벗어 차를 만들어 놀라치면 혼자 옆에서 곧잘 따라 하기도 했었죠.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한번 그 아이의 집에 놀러 가면 엄청나게 큰 황소에 놀라 대문간에서 서성이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아이는 자기보다 큰 누렁이를 손으로 쓸어주며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죠.
그러고 보니 그 친구가 한 번도 말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같습니다. ‘춤물이’라고 놀려도 늘 환한 웃음으로 대꾸하던 참 참한 아이였습니다.
겁도 참 많았던 같아요. 그 시절에는 풀어놓고 키우는 개가 참 많았습니다. 가끔 쥐를 잡기위해 놓아둔 쥐약을 잘못 먹도 눈이 파랗게 변하며 죽어가는 개들이 참 흔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른들까지 무서워 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고통스런 표정의 개가 죽어갈 즈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개에 아이들이 떼를 지어 피할라치면 엉엉거리며 뒤를 쫓아오던 덩치 큰 아이를 보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쩔수 없이 아웃사이더로 밖에 살수 없었던 참 참하던 아이는 어느 순간 우리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리고 잊혀진 듯 했죠.
세월이 훌쩍 흘러 30년 가까이 흐른 어느 날, 이웃에서 아직 그때 그 모습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아이 모습을 봤습니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하나도 변하지 않은 아이의 모습에서 유년의 기억이 살아나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살며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말을 건네지 못한 사이, 우리는 친구였습니다. 늘 조금은 떨어진 한 곁에서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친구, 아무리 구박해도 떠나지 않고 옆을 지키던 친구. 그 친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나만 서른 해 가깝도록 친구를 잊고 지낸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의 환청이 들려옵니다.
“두꺼바 두꺼바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꺼바”
2007. 8. 6
그대를 그리워하는 이로 부터
*배옥 자유기고가,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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