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가 그리운 날

person 배옥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7-07-07 12:20

여러 해 함께 산

장미를 걷어냈다

빨간 물감 지운 자리

새순이라도 보여줄까

능소화

파란 서슬이

가시 되어 따갑다

(졸저, 능소화)

친애하는 투(Tu)에게

능소화라는 꽃이 있습니다.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하는 이 꽃은 중국이 원산지로 옛날에서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능소화에 얽힌 이야기 한 자락이 기억납니다. 옛날 어느 대신 집에는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정혼자가 있었죠. 어느 날 대신은 역적으로 몰려 귀향살이를 가게 되었지요. 이때 정혼한 이도 함께 따라갑니다.

시간이 지나고 정혼자는 한양으로 과거를 보기 위해 떠납니다. 꼭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말입니다. 먼 귀향지에서 점점 늙고 병들어 가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생이 되는 딸, 딸의 수고에도 결국 죽고 마는 아버지, 시간이 흘렀습니다.

몇 해가 지나고 과거에 급제한 정혼자가 돌아와 그녀를 찾습니다. 그러나 이미 기생이 되어 돌아오기엔 늦었죠. 그래도 좋다며 그녀를 설득하고, 하루만 시간을 달라는 그녀는 목을 매고 자살을 합니다. 그녀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돌아오는 날, 그녀의 무덤에서 붉은 듯 노란 꽃이 피어납니다. 바로 능소화죠. 슬프고도 예쁜 전설을 가진 꽃, 우리네 정서와는 코드가 맞는 꽃이죠.

그래서인지 우리지역에서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입니다. 출퇴근을 하면서 안동대학을 지나는데 대학 인근 마을 집집마다 능소화가 대문을 넘어 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즘은 꽃이 지는 시기라서 그런지 떨어진 꽃이 무덤처럼 쌓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에서도 능소화를 한 오륙년 키웠었죠.

그전에 장미를 심었는데, 임하댐으로 수몰이 되면서 옮겨 심은 장미가 자라면서 대문을 완전히 가렸고 빨간 벽돌을 타고 올라가면서 한 동안 참 예쁜 모습을 자랑해 어딜 가나 장미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장미나무가 오래 묵어 그런가요? 가지가 아이들 팔뚝 굵기만큼 자라는데 대문 위로 여사로 올라가는 것은 물론 지붕까지 침범해 집안은 온통 빨간 장미가 남실거렸습니다. 가뜩이나 좁은 대문을 지날 때마다 장미 가시에 찔리기 않기 위해 피해 다닐 정도였죠.

게다가 4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는 장미는 12월이 넘어서도 계속 꽃이 피는데 도무지 계절을 알 수 없을 정도였고 또 장미꽃과 낙엽을 치우는 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결국 장미는 베어지고 그 자리에 능소화를 심었었습니다. 능소화 잔가지를 하나 가져와 키우면서 꽃이 피기 전까지는 담쟁이로만 알았습니다. 붉은 담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 영락없이 담쟁이였죠.

장미를 걷어낸 자리에 행여 장미가 씨앗 하나 던져두고 갔나 싶어 이듬해 몇 차례 유심히 살펴봤지만 장미 새순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능소화가 파란 서슬을 드러내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몇 해 후 능소화도 베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능소화 싹이 보이기 시작했죠. 능소화는 장미와 달리 씨앗 하나를 던져두고 갔더군요.

이제 며칠 지나면 능소화 꽃이 모두 사그라질 것 같습니다. 오늘은 능소화를 오래도록 봐두고 싶어지는 군요.

2007. 7. 7 배 옥 올림

 *배옥 자유기고가, 시조시인.

© 안동넷 & pressteam.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배옥의 고향편지"의 다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