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가 본 세상 (4건)

맑스주의 : 노동에 대한 이중적 태도
맑스주의 : 노동에 대한 이중적 태도 맑스주의는 노동이 긍정적 이념임을 주창하면서, 노동하지 않는 부르주아 세계를 비판했다. 맑스가 살던 당시의 사회주의 출판물의 만평을 보면, 자본가는 노동자의 약한 어깨를 올라타고, 쾌적하고 ‘노동 없는’ 삶을 사는 비만한 기생적 인간, 혹은 말쑥하게 차려입고 어슬렁거리는 자로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초기 사회주의의 일차적인 목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노동을 전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하릴없는 자’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사회주의가 설정한 이런 조잡한 적대자의 형상은 실제로는 봉건귀족이나 고액 연금
2011-02-22

노동 지양으로서 자발적 실업
비정규 노동을 서비스 영역으로 돌리면 노동의 가치하락을 막을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물질적인 것 외에 인간과 관계되는 업무는 비물질적 복지를 고양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손님에 대한 종업원의 과중한 독자 노동이 경감하면 손님의 만족이 올라갈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자긍심이(!) 올라간다면 종업원의 만족도도 올라간다. 단순히 인간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실업자로 있는 것보다는 심리적으로 더 낫지 않을까? 정말 그럴까? 백수가 집에서 빈둥거리거나 PC방에서 시간을 죽이기보다는 동네 파출소의 순경들을 위해 ‘
2011-02-15

자본주의ㅡ시간의 독재자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자 한다. 방해받지 않고, 기호와 취향에 따라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 그래서 맑스는 합목적적으로 규정된 노동을 벗어나는 것이 ‘자유’라고 말했다. 우리는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는 점은 다 잘 알고 있다. 전 지구적인 행복지수 평가가 그걸 잘 말해 준다. 지난주에 나는 따뜻한 잠자리와 한 그릇의 밥을 위해 강요된 임금노동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해방된 견습공의 삶을 살 것인가를 물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이고, 우리는 단 한순간도 선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인
2011-02-08

아름답고, 해방된 노동사회를 위하여?
아름답고, 해방된 노동을 위하여?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이 금언을 거역할 수 없는 진리로 믿고 살아간다. 노동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부여된 일종의 인간적인 가치이자 원죄로 생각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든 놀고먹기를 원칙으로 삼는 사람은 없다. 많은 선지자들, 철학자들이 역설하였듯이 노동은 중요한 삶의 목적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노동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헤시오도스는), ‘정신적 형식의 고양(고트프리트 벤)’이며, ‘인간에게 식사나 수면욕과 동일한 욕구(알렉산더 훔볼트는)’라고 말한다. 나는
201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