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감상일기 - 여곡성(女哭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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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더운 여름에는 공포영화가 딱이다. 우연히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다 영화를 하나 발견했다. 한국 공포영화의 레전드란다. 그 이름하야 이혁수 감독의 1986년 작 <여곡성(女哭聲)>되시겠다.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의 강렬한 제목과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 포스터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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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헤로인 셋째 며느리 |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남자에게 버림받은 한 여인의 복수극이 되겠다. 복수도 아주 처절히 한다. 남자의 아이를 임신을 했으나 출세를 위해 자신은 물론 뱃속 아이까지 죽임을 당한 여인. 남자는 출세가도를 달려 대감이 되고, 자식들은 장성한다. 남자의 자식은 귀신의 장난으로 첫 날 밤만 되면 죽어나가 두 며느리는 과부가 되고 이제 마지막 아들이 혼인을 치르게 된다.
오래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흥행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여주인공의 적정 수준의 노출, 바로 목욕씬. 그런데 셋째며느리가 될 이 여자, 뭔가 심상치 않다. 가슴팍에 만(卍)자가 새겨져있다. 아, 더 이상의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한다. 설명하려는 나도 귀찮고 혹여나 이 영화를 볼지도 모르는 당신을 위해. 뭐, 굳이 밝히자면 저 셋째 며느리 가슴에 만(卍)자는 귀신퇴치의 열쇠라고만 해두자.
사실 이 영화를 보는데에는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화질이 나쁘면 몰입도 잘 안될뿐더러 살짝 짜증까지 난다. 화장한 얼굴에 모공까지 훤이 보이는 고화질이 판을 치는 세상에 배우들의 얼굴은 물론이고 배경도 구분이 안가는 화질은 역정을 불러왔다. 게다가 배우들의 입모양과 소리가 조금 어긋나는게 후시녹음인 듯하다. 또한 녹음된 연기에서 25년의 세월을 고스라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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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귀신들과 붙어도 지지않을 비주얼 |
하지만, 이 영화가 86년, 그러니까 대략 25년 전에 만들어진 것을 감안할 때, 지금 봐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공포감만큼은 요즘 만들어진 공포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하이톤의 여자웃음소리, 고양이가 악을 쓰고 우는 것같은 비명소리 또한 공포를 더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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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특수효과의 향연. |
당시에는 상당한 수준이었겠지만 지금보면 촌스럽기 그지없는 어색한 특수효과들은 잠시 이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였나 싶을 정도지만 분장술 만은 절대 지금과 비교해도 떨어지지않는다. 오히려 더 무섭다고나 할까. 여담이지만 요즘 귀신은 미스코리아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치장을 하고 나온다. 당최 이해할 수 없다. 귀신이 귀신같아야지. 나 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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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짓이 웃는 모습이 순수하다. |
영화 속에서는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는데 드라마 주몽에서 모팔모 역을 맡았던 이계인 아저씨의 제법 탄탄한 흉부 근육을 자랑하는 소싯적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을 뽑으라면 주저없이 지렁이 국수 장면을 뽑겠다. 귀신이 씌인 부인이 대감이 먹던 국수에 장난질을 하는 장면인데, 아우, 소름끼친다. 잘 먹고 있던 하얀 소면이 갑자기 꿈틀꿈들 지렁이로. 것도 모르고 대감은 그냥 지렁이를 후르륵 짭짭. 정말이지 연기하는 분에게 박수를.
(소개하고 싶지만 혐오스러울까봐 캡쳐장면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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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파이어볼(Fireball)을 시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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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시어머니의 습격을 받습니다. |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귀신 씌인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결. 역시, 화려한 특수효과를 자랑한다.
대충 이 영화의 교훈이라고 하면 몇가지를 들 수 있겠는데 첫 번째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서 서리가 내린다. 두 번째로는 조강지처 버린 놈 치고 잘되는 놈 하나 없다. 마지막으로 공포영화의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
진짠지 가짠지 구분안되는 3D와 너무 세련된 연출에 질렸다던가 옛날영화의 향수를 다시한번 느껴보고 싶고, 한국 공포영화의 역사가 궁금한 님들에게 ‘조심스럽게’ 추천한다. 아, 그리고 과도한 기대는 금물. 25년전 작품임을 고려하며 여유롭고 관대한 마음으로 감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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