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나이를 먹는다." 써 놓고 보니 꼼짝없는 신파다. '인간은 서서 걷는다'는 진술과 다를 바 없는 맹꽁이 같은 수작이다. 물리적인 시간의 변화가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몸뚱이와 그 기관의 노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몸이 늙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것은 명확한 자각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매우 구체적이고 객관적이다. 산 따위를 오르다가 적당한 높이의 내리막을 내려가 보라. 혹은 쉽지 않은 틈새의 개울 같은 허방을 뛰어넘어 보라. 대체로 젊은 축들은 서슴없이 뛰어내려 버린다. 대상을 보는 순간, 그 높이와 자신이 발을 디딜 위
2008-07-08
이 풍진 세상 (54건)
▲ 칼국수 우리 집에는 이 칼국수를 '누렁국수'라 부른다. ⓒ 장호철 식성은 결국 '피의 길'을 따르는 듯하다. 아이들의 식성이 어버이들과 한참 다른 듯해도 종내, 부모의 그것을 따르게 마련이라는 걸 가르쳐 주는 건 세월이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 가운데서 가장 원형적인 형태로 유전되는 것이 미각인 까닭이다. 마흔 고개를 넘기면서 나는 아니라고 믿었던 내 미각이 선친의 그것을 되짚어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성년이 된 아이들의 식성을 지켜보면서 나는 아이들의 미각이 역시 내가 밟아왔던 길을 꼼짝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우쳤다. 대
2008-06-30
▲ 조선의 베스트셀러 -조선 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 ⓒ 프로네시스 ‘소설’은 무엇인가, 아니 좀 더 쉽게 얘기해 보자. 대체 ‘이야기’란 무엇인가. 처음으로 소설이 유통되던 조선조 후기 사회에서 그것은 어떤 느낌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갔을까. 그들에게 소설은 어쩌면 극적으로 구성된, 그리고 남몰래 들여다보는 ‘타인의 삶’ 같은 건 아니었을까. 완고한 성리학의 세계관과 규범 아래서 억압적 일상에 묻혀 있던 18세기의 조선 사람들, 특히 사대부가의 부녀자들에게 소설은 마치 ‘상상으로만 저지르는 염문’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
2008-06-23
▲ 21년된 선풍기 버튼이 여럿이지만 잃어버린 기능이 더 많다. 흰 얼룩 부분은 지금은 성년이 된 아이들이 어릴 적에 붙인 스티커 자국이다. ⓒ 장호철 한낮 날씨가 더워지면서 창고에서 선풍기를 꺼냈다. 선풍기는 모두 세 대다. 둘은 이태 전과 오륙 년 전에 각각 산 놈이니 아직 생생한 편이지만, 나머지 하나는 연륜이 만만찮다. 그게 언제쯤 산 건가, 가만 있자, 산 시기가 너무 까마득하다. 초임교인 경주 인근의 여학교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전세 120만원, 단칸방에서 3년을 살다 방 두 개에 입식부엌이 있던 양옥으로 옮기고 산 놈이
2008-06-17
▲ 김영택의 펜화기행 지식의 숲, 2007년 12월 ⓒ 장호철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은 사진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바꾸어 놓은 듯하다. 더러 풍경이나 사물을 담기도 했지만 전 시대의 필름 카메라는 주로 사람을 찍는 데 한정되었으니 그것은 만만찮은 비용 때문이다. 필름 구입에서부터 현상과 인화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큰돈은 아니지만 줄곧 비용이 드는 걸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디카'의 등장은 그런 여가 문화를 일거에 바꾸어 놓았다. 이름난 유적지나 명승지에선 디카를 들고 풍경이나 유적을 담는 사람들로 붐빈다. 필름
2008-06-09
▲ 통일쌀로 맺을 모 이 모가 그 빛깔만큼이나 싱그럽고 튼실하게 알곡으로 익어 북녘 동포에게 전해진다면 그것은 겨레의 화해와 상생으로 이어지리라. ⓒ 장호철 5월 중순을 넘기면서 경북 안동시 외곽의 논밭에도 모내기가 한창이다. 안동시 송하동 '솔밤다리’(송야교)에서 봉정사로 들어가는 송야천 옆 왕버들 고목 그늘에 하얀 찔레꽃이 소담스레 피고 있었다. 지난 18일, 오후 2시 이 나무그늘에 인근의 농민·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자리 잡은 농민들은 드럼통을 잘라 만든 숯불화덕 위에다 철망을 얹고 이날 잡았다는 돼지고기를 수
2008-06-03
▲ 우리 집의 무말랭이김치 '오그락지'. ⓒ 장호철 '골짠지'라고 들어 보셨는가. 골짠지는 안동과 예천 등 경상북도 북부지방에서 '무말랭이김치'를 이르는 말이다. '짠지'는 '무를 소금으로 짜게 절여 만든 김치'인데 여기서 '골'은 '속이 물크러져 상하다'는 의미를 가진 '곯다'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잘게 썰어서 말린 무는 곯아서 뒤틀리고 홀쭉해져 있으니 골짠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집에선 아무도 그걸 골짠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 식구들은 골짠지 대신 '오그락지'라는 이름을 쓴다. 이는 내가 나고 자란 경상북도 남부지방
2008-05-27
▲ 무섬의 외나무다리. 2005년 첫 방문 때 찍은 사진이다. ⓒ 장호철 마을을 둥그렇게 물이 돌아 흐르는 이른바 '물돌이 마을'로 안동에 하회가, 예천에 회룡포가 있다면 경북 영주에는 무섬이 있다. 안동시 임동면 무실의 행정명칭이 '수곡(水谷)'이듯 무섬의 주소는 정확히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水島里)다. 무섬은 '물의 섬'이라는 '물섬'에서 시옷(ㅅ) 앞의 리을(ㄹ)이 떨어진 형태다. 이는 '불삽'에서 '부삽'이 나온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이 이름과 그 해석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섬은 당연히 물 가운데 있는 것, '물'자
2008-05-22
▲ 주산지의 왕버들 왕버들은 원래 호숫가나 물이 많은 곳에서 자라는 낙엽 교목이다. ⓒ 장호철 주왕산 어귀에서 31번 국도로 돌아 나오다가 영덕 방면으로 좌회전해 나지막한 산을 넘는다. 길가로 잇달아 펼쳐진 사과밭에 사과꽃이 한창이다. 밭에 무성하게 자란 민들레 노란 꽃과 사과의 하얀 꽃이 어우러져 연출하는 조화가 아지랑이 속에 넉넉하다. 제법 가파른 고개를 넘으면 시야를 막는 왼편 산골짜기가 이른바 '내주왕(內周王), 절골계곡'이다. 그 계곡으로 들어가는 좁은 포장길을 달리다 중간쯤에서 직선도로를 버리고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청송군
2008-05-15
▲ 주왕산 전경 주왕산은 낙동정맥이 빚어낸 수려한 바위산이다. ⓒ 장호철 오월의 첫날, 경북 청송의 주왕산 국립공원을 '말 달리며 스치듯 보고' 왔다. 굳이 '주마간산'이라 표현한 것은 우리가 거기 머문 시간이 고작 두어 시간, 무심하게 제3폭포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백두대간 능선에서 갈라져 나온 낙동정맥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빚어놓은 이 수려한 산자락의 그늘에 들어서다 만 것에 지나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맑고 아름다운 계곡을 품은 기묘한 바위 봉우리의 바위산[암산(巖山)], 주왕산이 열두
2008-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