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문화

person 피재현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7-08-20 09:05

작은 기부모임을 5년째 하고 있다.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푼돈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자는 취지로 친구 몇과 시작한 모임이 5년을 넘었다. 거창하지도 않고 자랑스러울 것도 없다. 우리는 한 달에 1~5만원 정도의 돈을 자동이체 방식으로 한 통장에 모은다. 그 돈으로 장애인 학교와 야간학교 대안학교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지원해왔다. 기부금 증명서 발행이 가능한 곳에서는 연말에 증명서를 받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도 그만이다. 그런 소소한 일들은 내가 맡아서 한다.  

얼마 전에 한 기부자에게서 메일이 왔다. ‘이번 달에는 한 일도 별로 없는데 보너스가 나왔다. 그래서 그 돈 중 일부를 더 보내겠다’는 내용이다. 이 분은 지난 연초에도 ‘영수증을 열심히 모았더니 세금을 돌려 받았다’며 돈을 보내오기도 했던 분이다.

서울에 ‘아름다운 재단’이라는 것이 있다. 이 분들은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그 중 중요한 일이 기부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사회적 불평등은 주로 세금제도와 분배정책을 통해 해소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정책이 가능하게 하는 문화적 의식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문화와 나눔의 경험에서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정부 주도의 강제적 기부에 덴 경험이 많다. 새마을 기금, 국방성금, 평화의 댐 기금, 불우이웃돕기 등등 숱한 기부금을 학교나 직장을 통해 거둬갔다. 그러나 그 돈은 중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떼먹고 제 용도대로 사용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도 사회복지 단체의 전횡이 문제가 되기도 했고, 나 개인적으로도 장기기증을 약속한 한 단체가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낸 기금을 떼먹은 사건을 겪었다. 이런 사건들은 기부에 대한 불신을 깊게 한다.


그러나 나는 기부모임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자주 확인한다. 우리 모임에 기부금을 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선량한 양심에 따라 나눌 곳을 찾고 어려운 이웃을 그냥 봐 넘기지 않고 얼마간이라도 온정을 베푸는 것을 많이 보았다. 노동자를 핍박해 번 돈으로 천문학적인 십일조를 내는 기업의 정신과는 다른 고결한 시민의식이 우리 사회에는 많이 살아 있다.


선진국이나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의 국민들은 기부에 인색하지 않다. 또한 세금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


기부모임을 시작하면서 내가 내 건 슬로건은 ‘남을 돕지 못하는 가난은 없다’ 였다.

* 이 글을 쓴 피재현님은 시인이며, 현재 나섬학교 교사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영남일보 '문화산책'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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