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위조 그 뒷이야기

person 피재현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7-08-06 10:22

동국대 여교수의 학력위조 후폭풍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다. 한동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던 이 문제는 몇몇 유명 인사들의 허위학력 고백과 ‘학력위조범’에 대한 일제소탕이라는 두 가지 양상으로 적잖은 비를 뿌렸다. 오늘도 뉴스에서는 강남의 학원가에 학력을 위조한 강사들이 수두룩하고 이들이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리 사회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학력학벌 사회다. 그 사회적 병폐는 치유되기는 커녕 정도가 갈수록 심해져 지연중심의 사회가 학연 중심의 사회로 재편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한국사회에서 학력이 낮아서 불이익을 받거나 제 대접을 못 받았던 사람들은 순간적인 유혹으로 학력을 속이거나, 아니면 방송대학이다 사이버대학이다 무슨 무슨 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이다 하는 방패를 찾아 허우적거려야만 했다. 아프고 속상한 과거를 그들은 이 기회에 털어놓은 것이다. ‘괜찮다. 이해하고 용서 한다’고 말해야 한다. 학력 학벌로 인해 고통 받은 우리 사회의 치부를 더 꺼내보여야 한다.

학력이나 학벌을 속인 사람은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 곳에서부터 전혀 필요 없는 곳에까지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공직선거 출마자들, 대학 교수, 연예인, 학원 강사, 심지어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신교수 사건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폐단을 드러낸 우연한 사건에서 시작되어 사회 전반에 학력학벌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지는 폭풍으로까지 발전했다. 이제 폭풍은 진정되어가고 있다. 폭풍으로 넘어진 벼를 일으켜 세우고 상흔을 지워야 할 시간이다.

자! 어쩔 것인가? 이참에 모든 국민들에게 학력증명을 요구하고 주민등록증에 고졸, 대졸(00대), 유학(00대)라고 쓸 것인가? 허위로 밝혀지면 벌금을 물리고 구속할 것인가?

프로게이머라는 신종 직업에서는 학력이 필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프로게이머로 성공한 사람이 사회적 영역을 확대해 가다보면 학력을 속일 것이냐 지금이라도 대학을 다닐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당장 혁명적으로 학력,학벌 문제를 해소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프로게이머의 세계에 학력이 필요 없듯이 학력이 필요하지 않는 공간은 우리 사회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학원 강사가 왜 대학을 나와야 하는가? 서울대 아니라 하버드를 나와도 강의 못하면 수강생이 없어지고 그 세계에서 도태되기 마련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당연한 것 아닌가? 영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이 왜 외국대학 학위가 필요한가? 수천만 시청자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영어로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 전문가의 영역에 능력 없는 사람을 그냥 세워 두겠는가? 이러한 공간은 우리 사회에 얼마든지 많이 있다.

학력 학벌이 없어도 능력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넓혀가면서 학력학벌 최우선주의 사회의 병폐를 고쳐가는 것이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우리가 할 일이다.

* 이 글을 쓴 피재현님은 시인이며, 현재 나섬학교 교사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영남일보 '문화산책'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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