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하는 밭일
학교 아이들과 노작수업을 한다.
봄이 되면 상추 열무 배추 시금치 등속의 씨를 뿌린다. 씨감자를 쪼개서 넣고 고추모종 고구마 순을 심는다. 농약을 치지 않으니 억세게 자란 풀을 뽑다 보면 어느새 상추와 열무를 솎아 나누는 기쁨을 맛본다. 얼마 전에는 감자를 캤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당근 씨를 뿌렸다.
밭일을 해보지 않고 자란 아이들은 땡볕에 나가 일하기를 싫어한다. 하루 밭에 나가면 투덜거리고 선크림 바르고 밀짚모자 챙기고 하는데 정성을 쏟느라 정작 일은 얼마 하지도 못하고 돌아온다.
그런 아이들도 제법 팔을 걷어 부칠 때가 있다. 바로 수확을 할 때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감자가 뽑혀 올라오는 순간의 감동을 즐길 줄은 안다. 어릴 때 농촌에서 자란 나는 고추를 따는 일이 제일 힘들고 지금도 하기 싫은데 아이들은 그것도 수확이라고 좋아들 한다. 우리 아이들이 특별히 수확을 즐기는 데는 한 가지 더 이유가 있다. 그날 수확한 것을 똑같이 나누어 집에 가져가기 때문이다.
수확이 끝나면 다시 비닐을 걷고 덤불을 걷어 내고 밭을 정리하고 거름을 넣고...이렇게 이어지는 농사일의 사이클은 너무나 정직한 것이어서 새삼 그 이치를 배우게 만든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했더니 아이 하나가 ‘선생님 바보 아냐?’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 싶은 아이들, 창조된 원형을 갖고 싶어 하는 아이들, 농사 일은 아이들에게 그 창조의 과정에 스스로 참여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그 결과물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로또복권, 행운권, 경품권. 대박 혹은 한방이 실체 없이 흉흉한 요즘, 아이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먹으면 되지요 뭐 하러 그 고생을 해요?‘ 하기야 어제 장보러 간 마트에서는 감자 한 상자가 오천 원에 팔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감자 값을 알까봐 두려웠다.
요즘 아이들은 거름 주고 씨 뿌리고 풀 뽑고 감자 캐는 사이클을 어디서 배울까? 인생의 긴 여정이 매 순간순간 수확하는 기쁨일 수는 없으며 가끔은 힘들게 풀도 뽑고 쟁기질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디서 배울까? 아이템을 하나하나씩 얻어가며 서로를 죽이고 고지를 점령하는 게임방에서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배울 수 있을까?
* 이 글을 쓴 피재현님은 시인이며 현재 나섬학교 교사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영남일보 '문화산책'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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