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별이 마치 그물코처럼 떠 있다. 밤 열 한 시가 넘은 시간.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끈적거리는 웃통마저 벗어던지고 베란다로 나가 담배 한 대 빼문다. 일순. 정적을 깨며 아이들이 불빛만으로 지탱되던 네모 상자 속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내가 사는 아파트 한 쪽으로는 여고가 있고 다른 쪽으로는 남고가 있다. 이제 막 야간학습을 마치고 학교 앞에 기다리고 있는 차로 거리로 아이들이 밤늦은 귀가를 한다. 어쩌면 아직 귀가가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별 같은 아이들이다. 김민기는 벌써 30년 전에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만들어
2007-08-27
피재현의 雜感 (9건)
작은 기부모임을 5년째 하고 있다.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푼돈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자는 취지로 친구 몇과 시작한 모임이 5년을 넘었다. 거창하지도 않고 자랑스러울 것도 없다. 우리는 한 달에 1~5만원 정도의 돈을 자동이체 방식으로 한 통장에 모은다. 그 돈으로 장애인 학교와 야간학교 대안학교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지원해왔다. 기부금 증명서 발행이 가능한 곳에서는 연말에 증명서를 받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도 그만이다. 그런 소소한 일들은 내가 맡아서 한다. 얼마 전에 한 기부자에게서 메일이 왔다. ‘이번 달에
2007-08-20
대현이가 화가 많이 났다. 자주 드나드는 카페에 자기 사진을 올렸는데 ‘비행청소년’이라는 댓글이 달렸단다. 그래서 그 댓글을 단 사람과 문화적 차이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벌인 뒤 끝에 우리 클럽에 그 내용을 다시 올렸다. 대현이는 우리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교 3학년 아이다. 자신을 가꾸는 일에 열심이다. 머리를 염색하고 귀걸이를 하고 화장을 하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닌다. 내가 대현이의 이런 개성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게 된 데에도 다소 시간이 걸렸다. 대현이는 외모 가꾸기에만 열중이 아니다. 뷰티 아티스트가 꿈인 그는 수업을 마
2007-08-13
동국대 여교수의 학력위조 후폭풍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다. 한동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던 이 문제는 몇몇 유명 인사들의 허위학력 고백과 ‘학력위조범’에 대한 일제소탕이라는 두 가지 양상으로 적잖은 비를 뿌렸다. 오늘도 뉴스에서는 강남의 학원가에 학력을 위조한 강사들이 수두룩하고 이들이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리 사회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학력학벌 사회다. 그 사회적 병폐는 치유되기는 커녕 정도가 갈수록 심해져 지연중심의 사회가 학연 중심의 사회로 재편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한국사
2007-08-06
아시안컵 축구경기에서 우리는 3위를 했다. 이라크에게 지고 일본에 이겼다. 이라크는 전쟁으로 황폐한 나라다. 일본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숙적이다. 나는 경기를 보면서 이라크에게 제발 지기를 바랐다. 전쟁은 그 당사자들에게 최악의 상황이다. 민중들은 고통에 시달리며 죽기보다 더 못한 상황을 견디어 가야한다. 이라크의 승리는 잠시나마 이라크 민중들에게 기쁨을 주었을 것이다. 가뭄 속의 단비처럼 얼마나 달겠는가! 일제 치하에서 손기정 옹이 마라톤 우승을 했을 때 우리나라 민중들의 심정이 그러했으리라 짐작이 된다.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지든
2007-07-30
2000년 나는 가톨릭의 세례를 받았다. 살아오는 동안 내가 본 가톨릭은 세상과 정당하게 소통하려는 진심이 있었고 가난한 자의 편에 서있었다. 나는 나에게 닥친 뜻하지 않은 역경을 가톨릭 교회에 의지해 극복해가고 있다. 내 신앙생활에는,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많은 신자들과 더불어 피에르 신부의 삶과 사상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피에르 신부를 알게 해 준 첫 만남은 그의 저서 “단순한 기쁨”을 통해서다. 그는 이 책에서 ‘한 사회가 할 일은 무엇보다 그 사회의 가장 나약한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인간적인
2007-07-23
방학을 했다. 행복하다. 연수 일정이 잔뜩 잡혀 있고 여전히 거의 매일 출근을 해야 하지만, 얼마간이라도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이다. 오랫동안 별러왔던 오르세전을 보러 갈 것이다. 진작 사 두고 읽지 못한 사진관련 책도 읽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라도 우리집 아이들과 머리위로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을 보며 야영을 할 것이다. 나는 이미 종업식을 한 지난 금요일 오후, 카메라를 들고 능소화를 찍으러 갔다. 오래 전에 나 자신과 한 약속이었다. 올해는 꽃이 지기 전에 꼭 능소화를 찍으러 가자고. 이미
2007-07-23
학교 아이들과 노작수업을 한다. 봄이 되면 상추 열무 배추 시금치 등속의 씨를 뿌린다. 씨감자를 쪼개서 넣고 고추모종 고구마 순을 심는다. 농약을 치지 않으니 억세게 자란 풀을 뽑다 보면 어느새 상추와 열무를 솎아 나누는 기쁨을 맛본다. 얼마 전에는 감자를 캤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당근 씨를 뿌렸다. 밭일을 해보지 않고 자란 아이들은 땡볕에 나가 일하기를 싫어한다. 하루 밭에 나가면 투덜거리고 선크림 바르고 밀짚모자 챙기고 하는데 정성을 쏟느라 정작 일은 얼마 하지도 못하고 돌아온다. 그런 아이들도 제법 팔을 걷어 부칠 때가 있다.
2007-07-23
내일 치는 미술시험 공부를 하는 중학교 1학년 아들 옆에 앉아서 나도 책을 보고 있었다. 기명절지, 몰골법, 따뜻한 추상, 진경산수화 …. 뭘 열심히 외우는 아이의 웅얼거림을 듣고 있자니 모르는 말이 태반이다. 물론 내가 무식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미술을 전공한 아내도 아이의 질문에 말문이 자주 막히는 걸로 봐서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명절지는 각종 그릇에 꺾은 화훼 가지를 곁들인 그림이다. 몰골법은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직접 그릴 대상을 그리는 한국화의 기법이고, 따뜻한 추상은 칸딘스키를 대표 작가로 하는 추상화의 형태로, 작가
2007-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