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안동이 고향집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오신영 양, 호탈한 웃음이 매력적이며 고쟁연주자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오신영 양을 만나보았다. 고향이 어디인가? 저는 중국 호남성(湖南省)장사시(?沙市)태어났어요. 법조인 집안에서 2녀 중 맏이예요. 부모님은 매사에 신중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셨고, 전인 교육에 관심이 많으셔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식습득은 물론 한국 전통악기 가야금처럼 비슷해 생긴 중국전통 악기인 고쟁(古箏)을 14년 동안 익히게 하셨어요. 그래서 안정적이고 차분한 정서를 가지게 되었죠. 그럼 아버지의 권유로 고쟁을 하
2010-04-12
안동넷이 만난 사람 (19건)
탈춤공연과 재미난 입담으로 뮤지컬의 이야기꾼으로 안동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 맹활약하고 있는 류필기 씨, 그의 열정적인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탈춤은 우예 시작하게 되었니껴? 임동초ㆍ중등학교, 촌에서 유학을 나와 가꼬, 안동에서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안동대학교 체육학과ㆍ체육교육대학원 석사 전공했니더, 그런데 고등학교 때 써클 활동에서 우연히 민속반에 들어가게 되었띠랬는데... 처음에는 북 치고 장구 치는 게 싫었니더, 근데 민속반에 전교 학생회장도 있고 모범생도 있는데 공부도 잘하면서 북도 치고, 꽹과리도 치고 다
2010-03-02
강윤정 학예실장은 역사를 배우는 것에 있어 굉장한 열의를 가진 인물이다.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그만 두고 '역사'공부를 선택한 이유는 그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 학예실장을 만나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한 삶의 여정과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들어보았다. 1.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 학예연구실의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를 맡고 있습니다. 학예연구실의 주요 업무는 크게 학술연구와 전시자료 그리고 교육연수분야의 업무로 나눌 수 있어요. 이 가운데 저는 학술대회, 학술지 발간, 학술용역 등 학술연구 분
2010-02-01
안동의 대표 향토 음식인 안동식혜를 상품화하여 대중화에 노력하는 김유조 씨를 그의 식당 ‘안동국시’ 에서 만나보았다. 1. 김유조 안동식혜의 대표로써 당당한 여성CEO의 모습이 멋져 보인다. 안동식혜를 상품으로 만들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나는 안동에서 자랐고, 용상동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진천 송씨 종가 집에 시집을 갔지. 식혜 만드는 것은 친정어머니한테서 배우고 시집와서는 시어머니한테 또 배웠다. 내가 10년 동안 국시집을 하였는데 후식으로 안동식혜를 손님들에게 대접을 했다. 왜냐면 안동식혜가 소화가 잘되는 음식이라 후식으로 적
2010-01-18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이 특별한 날에, 사)경북미래문화재단 사무실에서 한국 사진작가협회 회원이며, 현재는 사)경북미래문화재단에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병두 작가를 만나보았다. - 사진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였고, 활동한지는 얼마나 되었나? 대학교 사진동아리방 ‘고리’로 처음 1988년 사진단체전을 하였으며 1990년 이후 대구에서 있을 적에 카메라 대리점을 하면서 당시 예우회 회장이었던 현 대구대 사진학과 교수님인 홍상탁 님의 권유로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다. 햇수로만 오래된 것 같고 근자에 대학원을 졸업하여 전문가의 길을
2009-12-28
고향인 안동에서 '고기 잡을 바다(일자리)'를 만들기 위하여 시동을 걸었다며 동분서주하는 김시완 경영지도사를 만났다. 자신의 블로그와 안동넷, 안동러브카페 등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 그것을 홍보하고, 동참해주기를 호소하곤 하는 그의 고향사랑 열정을 들어본다. *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경력중심으로 본인 소개를 해 달라! 85년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입사하고 중소기업창업지원시책 추진업무를 했다. 그 공로로 상공부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고, 90년 승진을 하면서 대구. 경북지역본부로 전근하면서 서울에서 대구로 이사 와서 눌러
2008-05-09
지역에서 금융기관의 모체라 할 수 있었던 조흥은행이 외환위기 후 여러 어려움을 딛고 신한은행이란 이름으로 탈바꿈 한 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러한 신선한 변화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이가 바로 우리 지역출신의 박부기 안동지점장이다. - 승진과 더불어 안동지점장을 맡게 된지 일 년 정도 된 걸로 아는데,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는지 소개해 준다면? 우선 안동에서 고교시절 3년을 보낸 인연 때문인지 안동으로 발령 통지를 받고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기분 때문에 많이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지난 일 년 동안
2007-12-28
조상의 삶과 정신이 녹아 있는 고전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예절과 올바른 도리를 가르치면서 온고지신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기타 치는 훈장님’ 김승균씨을 만나봤다. - 서당을 운영하게 된지는 얼마나 됐는가? 햇수로 7년이 조금 넘었다. 처음에 포항에서 서당을 열어 2년 정도 운영하다가 2003년 4월 즈음 안동으로 와서 계속 그 일을 하고 있다. - 지금 하는 일이 학교 때 전공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은데, 제대로 살리게 된 셈인 것인가? 어쩌다보니 전공을 제대로 살린 셈이 된 것인데, 솔직히 이야기해서
2007-12-04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관광 상품을 만들어 안동을 알리고 있는 사람, 은공예 전문가 김기덕씨를 만나봤다. 지역에서 은공예(금속공예)를 한다고 하면 낯설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희소성을 가진 직업이다. 언제부터 이 일을 하게 되었는가? 어릴 적엔 그다지 이런 쪽으로 두각을 드러내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다. 단지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이 환경정리 벽에 자주 걸리거나 하는 정도? 사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산업디자인학과에 대해 잘 모른 채로였고, 처음엔 도자기공예를 전공했었다. 그 당시 열심히 하던 동기들 몇몇들이
2007-11-07
외국인이면서 더 안동인 같은 모습으로 몇 년 째 지역을 비롯한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는 이가 있다. 2003년부터 안동시청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오가타게이코’씨가 바로 그다. 여러 번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야기를 했겠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안동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후쿠오카에 있는 기타큐슈시립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던 중에 “한국어가 일본어와 가장 비슷하며, 또한 일본어의 원류일 수 있다”는 내용의 강의를 들으면서 자연스레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다가 2000년 부모
2007-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