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인물 (43건)

장곡(藏谷) 권태일(權泰一)
권춘계(權春桂, 춘란(春蘭)의 아우)의 아들로 태어난 권태일(1569~1631)은 자는 수지(守之), 호는 장곡이며 후사가 없던 권춘란의 양자로 들어간 분이다. 공의 증조 이래로 벼슬살이한 내력을 살피면 아래와 같다. 증조 모(模)는 군기사주부(軍器寺主簿)을 지내고 통예원좌통예(通禮院左通禮)에 추증되었으며, 조(祖) 석충(錫忠)은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부(父) 춘란(호, 회곡(檜谷))은 사헌부 집의를 지내고, 내시교관(內侍敎官)을 지낸 생부 춘계는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권태일은 어린시절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 문하에서
2007-12-18

운암(雲巖) 김연(金緣)
공의 이름은 연(緣), 자는 자유(子由)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조부는 음성현감을 지내고 병조참의에 증직된 회(淮)이다. 부친은 성균관 생원으로 이조참판에 증직된 효로(孝盧)이다. 과거공부를 버리고 몸을 깨끗이 하여 자신을 지켰으며 뛰어난 행실 때문에 조정에 추천되었으나 곧 기묘사화를 당하여 기용되지 못하였다. 모친은 정부인에 증직된 양성이씨(陽城李氏)로 군수를 지낸 이지(李持)의 따님이며, 판중추부사를 지낸 정평공(靖平公) 이순지(李純之)의 손녀이다. 1487년 2월25일에 공을 낳았다. 공은 어렸을 때부터 덕이 높은 사람
2007-11-29

역동(易東) 우탁(禹倬)
역동(1262~1342)의 본명은 탁(倬)이며, 자(字)는 천장(天章) 또는 탁부(倬夫)이며, 호는 단암(丹岩) 또는 백운당(白雲堂)이며 세칭 역동선생(易東先生) 이라 부른다. 단산현 품달리 신원(현재의 충북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에서 출생한 역동은 본관이 단양이며, 시조 우현의 7대손이고 남성전서(南省典書)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추증된 천규(天珪)의 아들로서, 사관(士官)이 계속 이어진 명문 선정(先正)의 후예이다. 역동서원전경 - 사진출처 안동넷게시판 17세인 1278년 (충렬 4)에 향공진사(鄕貢進士)가 되었으며, 곧 발탁되
2007-11-14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
이광정은 자를 천상(天祥)이라 하고 호를 눌은 또는 녹문산인(鹿門山人(主人))이라한다 대대로 유업(儒業)을 닦으면서 이어온 가문을 배경으로 하여 태어난 눌은은 통덕랑을 지내고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인 선룡(先龍)의 사자(嗣子)이며, 자친은 사인 이시철의 딸이자 퇴계 이황선생의 형의 손녀인 증정부인(贈貞夫人) 眞城 이씨이다. 눌은의 生父인 후룡(後龍)은 선룡의 쌍둥이 아우(쌍태-雙胎)이며 어머니는 통덕랑 이유형(李惟馨)의 딸인 공주 이씨로 현종15년(1674년) 6월 24일 안동군 내성현(현 봉화읍)에서 눌은은 출생하였다. 눌은의 본
2007-10-30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김계행(세종13년, 1431~중종16년1521)의 자는 취사(取斯), 호는 보백당(寶白堂)이며. 본관은 안동 고려태사 선평(宣平)의 후예다. 아버지는 삼근(三近)으로 선교랑 비안현감을 지냈다. 어머니는 영가김씨로 삭녕감무(朔寧監務)의 따님이다. 공은 세종13년 신해 이월 신묘일에 안동부 풍산현 남불정촌 본가에서 탄생하였다. 만휴정(문화재청제공) 어려서 영민하여 생각이 깊고 과묵하여 놀기만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섯 살에 들어서 문자를 가르치매, 문득 깨쳐서 오래도록 잊지 않았다. 현감공이 「이 아이는 훗날 반드시 문예로서 우리 문호를
2007-10-17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1. 가계와 생애 장흥효(張興孝, 1564~1633)의 자(字)는 행원(行原), 호(號)는 경당(敬堂)이며, 태어난 곳은 안동부(安東府) 금계리(金溪里)이다. 고려태사(高麗太師)벼슬을 지낸 장정필(張貞弼)의 후손이며, 시조(始祖)인 장정필은 888년(신라 진성여왕 2년)에 대사마장군(大司馬將軍) 원(源)의 아들로 중국 절강성 소흥부(蘇興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함께 우리나라로 망명한 그는, 930년(고려 태조 13)에 고창(현재의 안동)에서 성주(城主)인 金宣平(안동 김씨의 시조), 判官 權幸(안동 권씨의 시조)과 함께 고려 태
2007-09-12

백암(栢巖) 김륵
공의 휘는 륵(?)이요. 자는 희옥(希玉)이며 호는 백암(栢巖)이다. 그의 선계(先系)는 예안인(禮安人)인데 중세에 영천(榮川)으로 이사하여 시거(始居)하였다. 어릴 때부터 뛰어나게 총명하고 장중하여 타고난 성품이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데가 있었다. 백암재사(문화재자료 제303호, 경북 봉화군 상운면 운계리 635), 사진자료 문화재청 십세에 부상(父喪)을 당하여 집상(執喪)과 애모(哀慕)의 범절이 성인과 같아 숙부인 사호(士?)가 사람을 볼 줄 아는 지감(知鑑)이 있었는데 언제나 찬탄하여 이르기를 “이 아이는 장차 반드시 우리 가
2007-09-04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
김방걸金邦杰의 본관은 의성으로 안동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사흥士興, 호는 지촌芝村이다. 부친 시온是?은 철澈의 아들이며, 수일守一(진璡의 제2자)의 아들 철은 극일克一(진의 장자)의 후사로 간 분이다. 모친 풍산김씨는 지평持平 봉조奉祖의 딸이다. 김방걸은 8형제중 4째로 어릴 때부터 타고난 성품이 한결 같았다. 11세 때 어머니상을 당함에 이를 슬퍼하는 마음이 어른 같았다고 한다. 지산서당 - 지촌 김방걸의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정조 28년에 후손 및 지방사림의 발의로 건립되었다. 일찍이 설사병에 걸려 위중한 적이 있었는데 어른들
2007-08-14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의 생애
구사당(九思堂)의 자는 간부(艮夫), 초명은 진행(晉行), 초자(初字)는 퇴보(退甫)였는데 자는 초자인 퇴보로 행세(行世)하였다. 호는 구사당이다. 구사당 당호(제산종택) - 안동민속박물관 "안동의 현판" 이미지 자료 구사당은 겸손하여 평소에 호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졸후(卒後) 그의 장서에 「구사당」이란 도장(圖章)이 찍혔으므로 사림(士林)에서 구사당이라 불렀다 한다. 본관은 의성(義城), 제산 김성탁(金聖鐸)의 장자(長子)이다. 구사당은 숙종34년(1708)에 안동 천전리(川前里)에서 태어났는데, 자질이 워낙 준수하고 지기(志氣)
2007-08-01

월천(月川) 조목(趙穆)
조목은 종종 19년(1524) 예안현 월천리에서 출생한다. 그의 자는 사경(士敬)이고, 호는 월천(月川) 또는 동고산인(東皐山人), 부용산인(芙蓉山人)이라 하였고, 관향은 횡성(橫城)이다. 율곡은 그의 『석담일기 石潭日記』에서 “공은 나면서부터 특이한 자질이 있어 다섯 살에 구두로 대학을 배우고, 열두 살에 경서를 모두 배웠다고(公生有異質 五歲口受大學 十二盡學經書) 하여 조목의 총명 호학을 특기하고 있다. 조목이 퇴계의 문하에 들어간 것은 1538년, 그의 나이 15세 때의 일이다. 이때 퇴계는 38세로 정 6품의 지위인 좌랑의 직
2007-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