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 휘는 부의(富儀) 자는 신중(愼仲)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성균 생원으로 이조참판에 증직된 효로(孝盧)의 손자요 가선대부 강원도 관찰사 연(緣)의 둘째아들이다. 참판공 효로가 처음 예안의 오천으로 이거하였다. 읍청정(?淸亭) 부의는 관찰공 연과 정부인 창녕조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 읍청정 ⓒ유교넷 공은 잉태 때부터 이전 부조(父祖)의 진실함과 순박함을 밝혀 화락으로 길러졌고 잠시라도 예도의 준칙을 벗어난 적이 없어 어릴 때부터 과실을 범하는 일이 적었다. 1544년에 외간상을 당했을 때는 형 후조당(後彫堂)공의 집상 의절이
2009-05-07
안동의 인물 (43건)
휘(諱)는 수일(守一), 자(字)는 경순(景純), 호(號)는 귀봉(龜峯) 성(姓)은 김씨(金氏)이며, 성균생원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 겸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에 수차 증직이 된 진(璡)의 아들이다. 어머니 민씨는 좌정승(左政丞)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문도공(文度公) 제(霽) 5대손 세경(世卿)의 딸이시다. >> 귀봉종택 ⓒ유교넷 진의 다섯 아들이 연이어 과거에 급제하여 광영이 일세에 빛났는데, 수일은 둘째이며, 가정(嘉靖) 무자(1528)년 11월 정사년(丁巳年)에 임하현(臨河縣) 천전리(川前里)에서 태어났으
2009-03-31
일생동안 벼슬을 탐하지 않고 오로지 산림의 은사(隱士)로서 학문탐구에만 전념하다 일생을 마친 송월재(松月齋) 이시선(李時善)은 봉화가 낳은 대표적인 유현(儒賢)중의 한사람이다. 이시선은 1625년(인조31년)에 출생하여 1725년(숙종41년)에 운명할 때 까지 인조· 효종· 현종· 숙종의 4대에 걸쳐 활약한 진일(眞逸)의 선비였다. >> 송월재(松月齋), 봉화군 법전면 풍정리 명동마을에 있다. ⓒ유교넷 본관이 전주이고 자가 자수(子修)인 이시선은 태종의 제3왕자(문집에는 제7왕자로 돼있다) 온녕군(溫寧君) 정(程)의 후손이어서 말하
2009-03-04
1539년 안동군 와룡면 가구동에서 태어난 회곡 권춘란은 선조조 유현(儒賢)이었다. 본관이 안동인 그는 선천적으로 학문을 좋아하고 고결한 인품을 숭상했다. 또 그는 용모마저 준수하여 주위사람들을 장래 그의 덕기(德器)가 크게 빛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가 어릴 때부터 보통 아이들과 달랐던 점은 그의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아버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사람이다” “어째서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까?” “아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한다. 이로 말미암아 등용되어 귀한 벼슬을 하게 되니
2009-02-03
>> 사촌 마을전경. ⓒ안동김씨대종회(iandongkim.com)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은 평생 동안 초야에 묻혀 인격을 완성하고 천지와 더불어 만물을 육성하여 주는 전체대용(全體大用)의 학문에 전심전력한 조선후기의 학자이다. 그는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문인 가운데 세칭 호문삼종(湖門三宗: 김종덕金宗德, 정종로鄭宗魯, 이종수李宗洙)과 호문삼노(湖門三老: 김종덕金宗德, 유장원柳長源, 이종수李宗洙)의 한 사람으로 퇴계학통의 정맥을 계승한 석학이다. 본관이 안동(安東)인 그는 1724년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서 김남응
2009-01-12
>> 청량정사(淸凉精舍), 문화재자료 제244호 (봉화군), 송재 이우(1469∼1517)가 조카인 온계와 퇴계, 조효연 등을 가르치던 건물이다. 그 뒤 퇴계 이황 선생이 이곳에 머물며 성리학을 공부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문화재청 공의 휘는 해(瀣) 자는 경명(景明)이며, 그의 선조는 진보현 사람이다. 6대조 휘 석(碩)이 고을 아전(吏)인데 사마시에 응시했고, 그 후 밀직사(密直使)로 증직 되었다. 이분이 휘 자수(子脩)를 낳아서 고려말 과거에 합격했고, 홍건적을 평정한 공으로 송안군(松安君)으로 봉(封)해졌으며, 벼슬을 판전
2008-12-30
목재 홍여하는(1620~1674) 학문과 문장으로 꽃 핀 인물이다. 당시 영남 사림에서는 영남 문장 사대가로 우복(愚伏), 동강(東岡), 창석(蒼石)과 함께 목재를 꼽았다. 학맥상으로는 전통적인 가학을 이어받았다. 그에 5대조는 유명한 허백(虛白) 홍귀달(洪貴達)이다. 아버지는 홍호(洪鎬: 1586~1646)는 우복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선조 39년에 문과에 올라 승정원 박사가 되었으므로 뒤에 대사간이 된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의 학문은 종적으로는 유가집안의 학통을 이어받으면서 횡적으로는 경북북부 유학자들의 학통을 수용했다고
2008-12-16
김성탁의 자(字)는 진백(振伯), 호는 제산(霽山), 본관은 의성(義城). 약봉(藥峯) 김극일(金克一)의 오대손(五代孫), 표은(瓢隱) 김시온(金是?)의 증손(曾孫). 통덕랑(通德郞) 김태중(金泰重)의 장남이다. 제산은 숙종(肅宗) 10년(1684)에 경상도 영양현(英陽縣) 청기리(靑杞里) 우거(寓居)에서 출생하여, 영조(英祖) 23년(1747) 전라도 광양(光陽)의 적소(謫所)에서 세상을 마쳤으니 향년(享年)은 64세였다. >>『제산선생문집(霽山先生文集)』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김성탁(金聖鐸 ; 1684∼1747)의 문집으로,
2008-12-03
“조선에 이상한 사람 바닷가에서 태어났으니 성은 이(李)요 이름은 재(栽), 자(字는 유재(幼材)일세 뜻은 있으나 재주 없고 또 때를 못 만났으니 바위틈에 초라함이 정말로 마땅하네 빛나리로다 내가 차고 있는 것 앞 어른들을 쫓아갈거나 즐기리로다 나의 즐거움 또 무엇을 구할 것인가” 이 시는 조선조 후기 대학자 밀암(密庵) 이재(李栽)가 56세때 쓴 작품 빈한과 고난으로 점철된 이재의 생애와 높은 포부 그리고 도(道)를 얻어 스스로 자족하고 고고한 사상을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 밀암집, 이재의 시문집,25권 13책. 목판본 1
2008-11-11
남악(南嶽)의 휘는 복일(復一), 자는 계순(季純), 본관은 의성(義城)이니, 신라 경순왕의 아들 석(錫)이 비조(鼻祖)이다. 고려시대에 휘 용비(龍庇)는 태자첨사(太子詹事)였고, 공순왕(恭順王) 때 휘 한계(漢啓)는 집현전 학사로 선발되었다. 증손 진(璡)은 생원으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호는 청계(靑溪)인데 바로 공의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여흥 민씨(驪興閔氏) 휘 세경(世卿)의 따님으로, 문도공(文度公) 제(霽)의 5세손이다. >> 연방세고(聯芳世稿), 『연방세고(聯芳世稿)』는 조선 중기의 학자 김진(金璡 ; 1500∼1580)
2008-10-29